화려함 뒤의 그늘
[문화현장과 노동] 노동 아닌 노동?
    2016년 08월 22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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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과 예술노동에 관심이 많은 미술비평가 권혁빈 씨의 새로운 칼럼 ‘문화 현장과 노동’을 연재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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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공공기금을 지원 받는 전시공간에서 기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공간 운영자는 한 공공미술관 관장으로 영전한 사람이었는데, 명성만큼이나 원한도 많이 쌓았는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복수의 민원인들이 증거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올 정도였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미술계 특성상 내부고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반신반의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포착한 혐의점은 적지 않았고, 그 중 두 가지 혐의를 고발하는 보도자료를 제작했다. 조사과정에서 발견한 혐의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에도 공유했다.

이 공간은 매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간지원을 받아왔는데, 담당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매년 선정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의혹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조사를 더 진행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최초 제보자 A씨였다. 그는 원래 문제의 전시공간에서 계약직 큐레이터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제보를 결심한 계기는 부당해고였다. 재계약을 앞두고,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레 해고 사실을 통보 받았다.

해고를 알린 것은 대표가 아니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이었다. 직장이 4대 보험을 간헐적으로 챙겨줘서 4대 보험 가입 여부를 수시로 확인하곤 했는데, 공단에서는 “퇴사를 이유로 가입이 해지되었다”고 알려준 것이다. 서류상으로 퇴사가 결정된 지 2주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대표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항의하자 그때서야 구두로 해고를 통보했다.

화려함 뒤에 드리워진 그늘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대학원 단계의 고등교육이 요구된다. 매체에 그려지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중산층, 상류층의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평균을 밑도는 노동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현실이다.

큐레이터의 노동조건은 소속된 기관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장 좋은 업무환경을 제공하는 곳은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인데,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제 노동자의 급여는 월 159만원이다. 주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월 최저임금이 126만원 정도이니 최저임금을 좀 웃도는 수준이다. 미술관은 여기에 4대 보험과 초과근무수당도 지급하고 있다.

전시기획자

전시 설명회 모습(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사진=광주시립미술관)

조금 의아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으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기본급만으로는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62만원에도 미치지 않으니 급여 수준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4대 보험과 초과근무수당은 당연히 지급해야하는 것이니 자랑할 만한 조건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시간제 노동에 종사하더라도 4대 보험과 초과수당을 지급 받는다. 하지만 이 정도가 갓 대학원을 마친 젊은 큐레이터 지망생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노동환경이다.

그렇다면 사립 미술관들은 어떤 상황일까? 적지 않은 기업 미술관들은 하청업체에 운영을 맡긴다. 여기서 하청업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나누어진다. 모기업에서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듯 미술관 관리 인력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강남의 한 미술관의 예를 들어보자. 이 미술관은 단 한 명의 큐레이터를 직접고용하고 있다. 법적으로 미술관은 학예사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고용된 경우다. 하지만 그가 큐레이터로 맡은 업무는 그리 많지 않다. 미술관 운영은 운영권을 위탁 받은 하청업체 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의 급여 수준은 국공립 미술관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과 비슷하지만, 초과 및 주휴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된 포괄임금계약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주 업무인 전시기획 외의 업무들을 2중, 3중으로 맡아서 일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역할을 동시에 떠맡다보니 야근 및 주말근무가 빈번한 편이다.

최악은 ‘대안공간’ 등으로 불리는 비영리 전시공간에서 근무하는 이들이다. A씨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큐레이터’ 혹은 ‘디렉터’, ‘코디네이터’ 등 허울 좋은 직책으로 불리지만, 8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한 적이 없고, 4대 보험의 혜택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 이들에게 초과근무수당이나 주휴수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 전시공간은 급여 대신 앞서 언급한 허울 좋은 직책이 적혀있는 명함을 지급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급여를 주지 않는 대신 ‘전시공간의 이름값’을 주겠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런 전시공간들이 인력을 고용할 수 있게끔 인건비를 대신 지급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지급된 돈이 증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류상으로만 급여를 지급하고 그 돈을 운영비나 운영진의 쌈짓돈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얼마를 받든 급여를 받는 사실만으로 삶의 만족을 느끼는 이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

문제의 원인은 너무나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일을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고용인들도 그렇고, 피고용인도 마찬가지다. “너는 노동자야”라고 말했을 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경우를 적잖게 만난다. 놀랍게도 악덕 고용인 가운데는 자신이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SNS를 통해 이 같은 생각을 피력하는 경우를 적잖게 볼 수 있다. 유독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그토록 냉혹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일하고 사는지 들으면 연민이 안 생길 수 없는 피고용인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누가 누굴 걱정 하냐”고 쏘아붙이고 싶어진다.

많은 문화현장에서 사회의 보편적 기준들을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이들도 그 경향에 충실할 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같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나 예술이 얽히면 완전히 다른 문제로 취급되는 것이다. 현실은 근로기준법이라도 준수하자는 주장을 해도 혁명이 될 판인데도 말이다. 문화예술직군에 소속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신분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제를 느끼더라도 제도적 도움을 얻을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근로계약서 작성이 의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다. A씨가 근로계약서를 요구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우리는 계약서 같은 거 쓰지 않아”였다. 자신이 4대 보험 가입 대상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고용인들도 자신의 행동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모른다. 알더라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용관계 뿐만 아니라 사제 관계, 친소 관계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들이 먼저 고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실 이는 노동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돈 안 줘도 일하겠다는 애들이 많으니, 너희는 오히려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야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전시기획자의 꿈을 꾸며 전시장들을 전전한다. 경력에 따라 급여가 인상되는 경우는 기대하기 힘들며, 업무의 성과는 자신이 고용된 공간과 그 운영진의 성과로 넘어간다. 전문인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냐고 물을 때, “빚을 내서라도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조언만이 조언 아닌 조언으로 돌아올 뿐이다. 고용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성장해왔고,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부속처럼 소모되는 사람들이다. A씨는 월 150을 받았는데, 이 공간의 지출 내역을 뒤져보니 월 80만원을 받는 직원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 나 하나 지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연스레 성장하기 전에 버티지 못해 스러지는 이들이 적잖았고, 이들은 공부 열심히 해놓고 “열정이 부족해서” 미술계를 떠난 사람들로 기억된다. 문화현장에서 만나는 부조리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들을 압축한 것인데, 그 사실은 늘 뒷전이다.

필자소개
문화정책과 예술노동에 관심이 많은 미술비평가. 전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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