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땅
    [토론] 정당 지향과 당내 민주주의
        2016년 08월 17일 05: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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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정의당 사민주의 의견그룹 ‘팀사민’ 주최로 열린 “문예위 사태로 본 정의당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정당의 지향과 당내 민주주의’ 주제의 발제문이다. 길어서 2회로 나눠 게재한다. 진보정당과 여성주의에 대한 고민의 결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글에 대한 반박, 비판, 지지 등의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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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과 관련해서 논평을 발표한 후 논란이 번져가는 과정을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매카시즘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너 메갈이야? 메갈 반대야?”라고 양자택일을 강요했고, 그 영향이 특히 문화예술계통 종사자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까지도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과 다르지 않았다.(1)

    그리고 이러한 사상검증의 모습은 이 전에 각자가 메갈리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무관하게, “내가 왜 그걸 대답해야 해?”라는 반감, 특정 집단에게 마녀사냥 당할 수 있다는 공포, 나는 “메갈리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으로 시작하는 변명과 혼란 등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낳은 가장 큰 변화는 그 동안 메갈리아에 대한 태도를 의도적으로 혹은 정말 몰라서 회피하고 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메갈리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여성주의가 이 사태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라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당 내 활동가들에 대한 당 지도부의 태도와 처분 결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당내 체계의 문제점들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극단적 운동은 극단적 사회의 반영

    ‘메갈리아는 여성주의’인가라는 물음 앞에, 나는 선뜻 대답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라는 방식이 불편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혐오를 혐오로 대처하는 방식이 불편했고, 그런 사람들이 나 이외에도 많을 것이므로, 좋지 않은 전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선을 그었다. 그랬다는 것 자체도 이번에 깨달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나는 메갈리아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이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그 앞에 붙어야 하는 수식어를 끄집어내고 싶어서이다. 저 문장은 “나는 메갈리아에 주는 건 없이 동의하지 않았지만…”으로 수정되어야 정확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나는 자신의 비겁함을, 기성세대의 비겁함을, 남성들의 비겁함을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비겁함이 보였다. 그 비겁함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10년이 넘게 이어져 온 된장녀, 김치녀 등 혐오의 말들을 방치하고 방조해 온 우리 모두가 작년 메르스 사태 때에야 생긴 메갈리아의 탄생에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서프러제트

    영화 서프러제트 출연진이 입은 티셔츠 -“노예가 되느니 반역자가 되겠다.”
    (출처: https://failedcritics.com/2015/10/12/suffragette/)

    최근 우리 당에서도 공동체 상영을 추진한 바 있는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19세기 말부터 영국 내에서 본격화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듯이 서프러제트 운동이 처음부터 과격한 노선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은 서프러제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던 주인공은 의회에 가서 세탁공장에서의 노동과 삶에 대한 증언을 하고, 충분한 설득력을 가져 투표권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에 부푼다. 그러다 그 믿음이 ‘배신’ 당하고, 이에 항의하다 경찰의 폭력진압/심문/투옥 과정을 거친다. 이 후 내부고발자 역할에 대한 제안을 거절하며 스스로가 서프러제트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상류층 출신의 서프러제트 일원인 의원 부인이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초지일관 강한 운동을 주장하던 약사, 혹은 그 선동의 중심에 있던 팽크허스트 부인이 아닌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과격한 운동에 동참한 이후 심문 과정에서 “​폭력이 초래하는 건 죄와 희생뿐이오. 남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누가 줬습니까?(2)”라고 묻는 경찰에게 주인공은 “​폭동 속에서 여자들이 맞는대도 강 건너 불구경 할 권리는요? ​우리가 창문을 깨고 물건을 태운 건 그래야 남자들이 알아듣기 때문이죠. 우린 두들겨 맞고 배신당해서 남은 게 없었으니까요.”라고 응수한다.

    다시 당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정의당 문예위의 논평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논평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며칠 후 당원비상대책회의(이하 비대위)까지 만들어졌다. 비대위는 자신들이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혐오를 반대하는 것이고, 메갈리아는 여성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당의 사과, 문예위 책임자의 처벌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주장은 여러 가지로 모순된다.

    먼저 정말 자신들이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순수한 혐오 자체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렇게 되묻고 싶다. ‘된장녀’라는 단어가 ‘김치녀’ 등등으로 변질되어 웹을 떠도는 10여년(3) 동안은 왜 혐오를 반대한다는 목소리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왜 생긴 지 1년도 안 된(4) 메갈리아에만 그런 적극적인 반감을 드러내는지 말이다.

    정말 방식의 문제라고만 느낀다면 그 10여년 동안 된장녀, 김치녀라는 표현이나 이보다 훨씬 심한 ‘보슬아치’라는 표현들을 보고도 똑같이 싸우고 문제제기를 했어야 했다. 그걸 함께 비난해 준 적이 있는가. 물론 모두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보고 ‘이건 심하네’ 싶지만 내 일이 아니니까 넘어갔을 것이다. ‘폭동 속에서 여자들이 맞는대도 강 건너 불구경 한’ 사람들은 19세기 영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성혐오의 단어에 함께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자체를 무조건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보태주는 거 하나 없이 ‘메갈리아’에만 과하게 비판적인 것은 비겁하다. 그 10여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메갈리아의 1년간의 모습들에 이렇게 분노를 넘어 행동에 나선 남성들은, 메갈리아의 표현 방식을 문제 삼고 있지만 사실은 본인이 비난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훨씬 많이 사용된 ‘여혐’ 단어들을 보고는 그냥 넘어가면서, 씹치남이라는 단어에만 분노가 느껴진다면 당신은 순수하게 혐오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이 훨씬 많은 온라인상에서 여성이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을 10년 이상 방관해 왔다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책임이 남성들에게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여성인 나 자신도, 한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소극적인 방식이 성공적으로 사회를 바꾸지 못해왔기 때문에 메갈리아가 탄생했다는 ‘방기의 책임’을 느낀다. 극단적이고 강성의 운동은 사회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므로.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땅(5)

    이런 얘기를 했음에도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의 사람은 “그래서 당신은 메갈리아인가” 혹은 “메갈리아에 찬성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머릿속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메갈리아는 누가 찬성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하나의 흐름이라고 답하고 싶다. 다만 이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문제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사건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많은 남성들이 불쾌해하는 잘못된 운동이라면 당연히 남성들 지지를 못 받고 가만히 둬도 저절로 망할 텐데 말이에요. 어쩌면 그 이유로 이미 망하고 있는 운동에 왜 그리 난리들이신지.”(6)라는 의견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의 심각성을 스스로 증명해 메갈리아 논쟁을 확산시킨 건 이번 문예위 논평을 메갈리아 논란으로 몰아간 사람들이다. 물론 애초에 성우 교체 논란이 메갈리아란 사이트의 성격과 완전히 분리되어서 사고될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정치적으로 순진한(naive) 면이 있었다.

    하지만 문예위 논평의 수위는 메갈리아가 일베와 완전히 똑같으므로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노동권을 정치의 영역에서 두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7)(8) 대부분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준이었다. 특정 의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논평이 특정 세력에 대한 지지로 왜곡되게 해석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싸움을 건 것은 메갈리아에 대한 가치판단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노동권의 입장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노력을 무시하고, 메갈리아에 대한 논란을 끄집어내어 입장을 명확히 하기를 요구한 사람들이다.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잘 몰랐던 사람들은, 오히려 메갈리아에 대해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집단의 태도를 통해 메갈리아, 혹은 젊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실감하게 된 면이 크다. ‘메갈리아는 일베와 같다’와 ‘메갈리아는 페미니즘 운동의 한 방식이고 방식도 문제될 게 없다’는 극단적 입장들 사이 넓은 스펙트럼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함으로서 오히려 다수의 사람들이 메갈리아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메갈리아에 대한 엄청난 분노, 미러링일지라도 혐오는 안 된다는 주장(9) 자체가 미러링의 효과를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 행동의 주체의 의도와 별개로 미러링의 사회적 효과가 나타나는 지점은 ‘네가 날 아프게 했으니 나도 널 아프게 하겠어’라는 지점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아무리 소리쳐도 남 일이니 무관심하거나 큰 일이 아니라고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에게 그 아픔을 느끼게 하겠’다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남성들이 ‘혐오 자체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이제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메갈리아 운동이 효과를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메갈리아라는 사이트 역시 미러링의 효과를 먼저 확인한 후 탄생했다. 처음 논쟁이 시작된 디시인사이드 메스르 갤러리에서 운영진은 ‘’김치녀’가 통용될 때는 별다른 제재가 없다가 ‘김치남’이라는 단어 사용이 급증하자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금지했다. 이에 ‘김치녀’는 왜 그대로 두냐는 사용자들의 반발에 ‘김치녀’도 금지어로 지정했다.’(10) 10년 동안 디씨 인사이드에서 근절되지 않았던 김치녀라는 단어는 김치남의 등장 이후에 겨우 며칠의 논란 끝에 제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성평등한 사회는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땅’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가야할지를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메갈리아 역시 변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미러링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어디부터 제재를 해야 하는지 내부 논쟁을 겪어왔고 그 결과 분화해 왔다.(11)(12)

    메갈리아는 일베와 똑같다는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메갈리아의 성소수자, 장애인, 고인, 어린 남성 등에 대한 공격성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메갈리아의 여러 분화된 커뮤니티들이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는 이유 등으로 그러한 약자, 소수자 등에 대한 미러링을 제재하기 시작한 차이 자체가 중요하지 않으며 다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특히 이번에 논란의 시발점이 된 티셔츠에 소개된 문구 “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스스로 남성들에게 의존적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런 면에서 이 문구의 화자가 (비록 남성들의 프레임이긴 하지만) 그토록 찬양하는 ‘개념녀’와 무엇이 다른가.

    물론 메갈리아 스스로는 누군가로부터 ‘허락받은 페미니즘’을 원치 않는다. 코르셋을 거부한다. 남성들의 모순되는 태도는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지금까지 여성들을 비하한 단어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너만 아니면 됐지 왜 그렇게 흥분하냐’며 가볍게 여겼고,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그 단어를 없애기보다는 그 단어와 자신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코르셋을 입고, 스스로를 자기검열 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교묘한 구조 자체가 미러링을 탄생시킨 주 배경이다.

    남성들을 향한 단어에 ‘왜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느냐’고 하기 전에, 스스로 그런 취급을 받아 불쾌하다면 본인들이 써 왔던 단어들에서 왜 모든 여성을 성형중독자, 잠재적 꽃뱀, 이기적인 허영심 덩어리, 운전미숙자 등으로 싸잡아서 얘기해 왔는지, 개념 없이 해외여행 다니면서 무책임하게 메르스를 국내에 퍼트린 김치녀로 단정했는지에 대한 자성을 하는 것이 보다 성숙하고 일관된 태도다. 또한, 여자가 아니면 말을 말라는 것은 지금까지 남성들이 자신들이 공격받지 않는 ‘혐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봐 왔던 역사와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메갈리아의 분화와 자체적인 내규의 생성은 스스로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하나의 운동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옳다. 이러한 시각은 지금까지의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사회에서 혐오가 사라지길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들에게 더욱 더 필요하다. 메갈리아를 ‘박멸’해버리겠다는 사람들은 그래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한지, 그보다 지금부터라도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격려하는 것이 진짜 혐오를 없애는 방향은 아닐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고민의 전제에는 그 것을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든, 성평등이라고 얘기하든 지금의 상황에서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약자이고,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거울이 아닌 거울에 비친 원본을 함께 깨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서 시작될 수 있다. <계속>

    <참고>

    1. 심지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라는 게 존재한다.(참조: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위키피디아)

    2. 실제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3. 나무위키에 따르면, 그 단어가 처음 나온 것이 2005년이라고 한다. (참조: 된장녀, 나무위키)

    4. 디씨인사이드에서 메르스 갤러리가 독립하면서 메갈리아 사이트가 생긴 날짜가 2015년 8월 6일이니 이 발제가 발표되는 날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넘을 예정이다.

    5. 이 표현은 Olive Schreiner의 책 Dreams(1890)의 표현(this far land which no one has ever reached)에서 빌려왔다.

    6. 서정민갑, 7월 30일 작성 페이스북

    7. 일베와는 다르지만 문제가 크다. 문제가 있지만 일베와 비교될 수준은 아니다. 문제가 있지만 여성주의의 한 흐름이다. 아주 효과적인 여성주의 운동이다 등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한다.

    8. 참조: <메갈리아는 여자일베가 아니다>, 물뚝심송, 직썰,

    9. 혹은 그러한 말과는 달리 본인들 역시 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는 모순적인 양상까지 포함해서

    10. 참조: 메갈리아, 위키피디아,

    11. 참조: <‘메갈리아’ 성향 따라 워마드·레디즘 등으로 분화>, 경향신문

    12. 반면, 일베저장소의 경우 자극적인 글을 계속 써야 회원 등급이 높아지는 시스템이고, 운영자는 이를 통해 광고 수입을 얻을 수 있어 이를 이용한다고 한다(참조: <일베와의 전쟁, 고소만이 살길이었네>,한겨레)

    필자소개
    정의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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