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세비야의
    아름다운 '공중 천막'
    [에정칼럼] <지구를 위한 착한 여행기> 공모
        2016년 08월 17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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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출장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여행을

    다시 라오스에 왔다. 주차장 모두를 덮고 있는 태양광 패널에 감사하며 바로 공항을 빠져나온다. 이 발전시설은 일본국제협력단(JICA)이 지원한 것으로 왓따이(Wattay) 공항 전력의 절반을 충당한다. 물론 감사는 그 지붕 덕분에 불볕을 모면하고 올라탄 시원한 택시에 올리는 게 먼저다.

    요즘 라오스는 태양광 발전이 은근히 유행이다. 십여 년 전 세계은행, 타이, 베트남 등이 북부 산간에 작은 가구(Solar Home System)별로 설치했던 광범위한 사업에서부터, 몇 해 전에는 라오스 남부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시설 실험이, 요즘은 위양짠(Vientiane)에 새로 짓는 세계은행 건물에 태양광발전 설비가 들어간다는 소식들이 있다. 그리고 엊그제는 이 유행에 편승해 한국인이 라오스에 1조 원대 태양광발전 공사가 있다는 뉴스를 만들어 몇 억 원대 사기를 친 사건도 벌어졌다. 이 정도면 확실히 유행이라 할 만하다.

    위양짠에 오면 정해두고 늘 묵는 숙소에 도착했다. 처음 우연한 인연으로 오게 된 라오스는 뭐 입이 떡 벌어지는 산수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유물도 없는 심심한 곳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예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라오스는 이들이 좋아 이들이 돕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함께 돕고 싶도록 만드는 곳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태양광발전기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렇게 지구적인 기후변화도 에너지 문제도 아닌 라오스 시골 사람들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읊조리게 된 풍월이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라면 더욱 흥취가 올라 이후 나의 여행들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라오스 짬빠싹 왓푸 계단

    라오스 짬빠싹 왓푸 계단

    익숙한 세계를 아주 낯설게

    그 여행들을 훑어가보자. 내가 만난 첫 1세계는 2013년의 베를린이었다. 2000년대 초반 멕시코를 가기 위해 거쳤던 밴쿠버가 있지만 낯설게 음습한 날씨와 황막한 거리 말고는 호텔도 술집도 심지어 술집의 분위기와 영어로 된 간판마저도 전혀 이국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라오스를 떠나 막 도착한 8월의 베를린은 이상하게 날씨 말고 모든 게 낯설었던 것 같다. 엄청난 덩치의 사람들, 미소를 찾아 볼 수 없는 표정, 그만큼 무채색인 소박한 옷차림, 인도와 동급으로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 그 자전거 전용 도로를 제대로 인식 못하고 자꾸 침범하는 작은 동양 여자에 대한 가차 없는 경고들 등.

    무엇보다 이상했던 건 아주 어두웠다는 것이다. 어디나 그랬다. 한국에서라면 장사 안하는 집이라고 여겨질 만큼 베를린의 가게들은 안에 최소한의 전등을 켜둘 뿐이고 손님이 오고 나서야 그 테이블에만 작은 촛불을 하나 갖다 주는 것이 고작인 곳이 많았다. 거기서 몇 달을 살고 난 친구는 물을 아끼기 위해 고춧가루가 남을지라도 식기세척기를 써야 하고, 욕조 목욕은 언감생심, 대변이 아니면 변기의 물을 내리지 않는 엄청난 게 습관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베를린은 독일이 오래전부터 녹색당이 집권에 참여하고 오래지않아 탈핵할 것이라는 크고 꿈같은 것들도 길거리에서 또는 벽보를 통해 쉽고 가깝게 보여줬다. 첨단의 유리 건물보다 돌로 만든 낡은 건물이 더 많이 보였지만 그 창문이나 철문, 나무문 할 것 없이 문이란 문은 모두 요철(凹凸)로 맞물려 절대 냉기든 열기든 쉽게 드나들 수 없도록 한 일상의 철저함도 내게 낱낱이 보여줬다.

    세비야의 아름다운 공중천막 아래로

    서당 개 삼년의 풍월은 한량의 음풍농월 수준인지라 그것이 철저한 일상이 된 베를린은 부담스러웠나보다. 서둘러 라오스와 같은 태양을 가진 모로코로 떠났다. 모로코의 사막과 땅과 전혀 다르지 않은 흙집들이, 숲과 논과 다르지 않은 라오스의 나무집, 초가들만큼이나 친근하게 여겨져 한 숨을 돌렸다.

    모로코 아틀라스-사하라 지역의 흙집

    모로코 아틀라스-사하라 지역의 흙집

    모로코 탕헤르에서 건너편 즐비한 풍력발전기들이 빤히 바라보이는 스페인으로 지브롤터해협을 건넜다. 스페인 남부를 버스로 이동하는 데 방금 떠나온 음악보다 아름다운 아람브라 궁전의 잔상보다 모로코 북부의 경작지 풍경이 겹쳐 보인다. 아니 가만, 군데군데 좁더라도 버려진 것 같은 그냥 두는 돌밭이나 수풀, 도랑이 있었던 모로코와 달리 스페인은 잘 운영 되는 골프장처럼 손질이 안 된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이 매끈하다. 이게 1세계와 주변부의 차이인가?

    버스는 곧 지금의 1세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 콜럼부스가 항해를 시작한 세비야에 도착했다. 도심 정류장 광고판마다 멸종되어버린 스페인 삵이 갇혀있다. 모로코와 스페인의 들을 생각해 본 뒤여선지, 사진이 1세계와 주변부의 차이가 동물의 운명도 좌우함을 광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비야는 여기에 더해 합법적으로(?) 멕시코와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했음을 과시하는 각종 기념물과 육중한 석조 박물관들로 채워진 것 같아 모로코와 다르지 않은 태양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몹시 지쳤다.

    그때였다. 신기루처럼 하얀 그늘이 나타났다! 지친 내가 어느덧 들어선 골목 위로 높이 하늘이 보이는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지나는 행인들을 위해, 가게를 들고나는 손님을 위해, 거기가 집이거나 일터인 자신들을 위해 골목골목 천막을 잇듯 뜻을 잇고 손을 모아 설치한 것이리라. 완전히 하늘을 가리고 투명한 바람을 막지 않도록 한 슬기가 이 공중천막을 더욱 아름답게 받쳐주고 있었다.

    스페인 세비야 공중천막

    스페인 세비야 공중천막

    <지구를 위한 착한 여행기> 공모

    작년 이맘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라오스에 있는 나에게 방콕 소재 환경관련 국제기구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라는 학생의 메일이 전달되어왔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출판한 「착한 에너지 기행」과「나쁜 에너지 기행」을 인상적으로 읽었다며 혹시 다음도 기획하고 있다면 자신이 연구원은 아니지만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 이렇게 하면 세비아의 공중천막을 처음 누가 상상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나의 풍월은 기후변화와 에너지를 왼쪽으로 돌아 다시 세비야 사람들, 사람들에게로 돌아왔다. 스페인에서 삵을 멸종시킨 원인들은 뭘까? 모로코의 흙집에서 사는 것은 어떨까? 왜 자전거로 여행할까? 탈핵도보행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할까? 훨씬 더 풍부하고 날카롭고 진지하고 유쾌하고 다른, 지구의 생명들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여행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바로 지금 당신의 여행노트를 챙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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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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