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삭제 강령 개정안
    더민주 대표 후보들 강하게 비판
    김종인 "그런 걸 가지고 선명성 경쟁" 비아냥
        2016년 08월 16일 01: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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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에서 의결될 당 강령 개정 초안에서 ‘노동자’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은 물론 최고위원 후보들,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당 지도부는 오는 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해당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더민주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지난 12일 마련한 새 강령 중 문제가 된 부분은 당의 지향점을 적시한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 문구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를 삭제한 점이다. 전대준비위 측은 시민의 개념에 노동자가 포함되기 때문에 삭제한 것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하고 있지만 당 안팎으론 ‘노동자’ 문구를 삭제한 새 강령을 수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차기 당대표 자리를 노리고 있는 김상곤‧추미애‧이종걸 후보도 일제히 전대준비위의 새 강령을 비판하고 있다.

    김상곤 후보는 16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노동자라는 세 글자가 아니라, 우리 당의 방향과 또 우리 당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 이런 문제하고 연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후보는 지난 13일에도 관련 논평을 내고 “강령의 첫 문장을 바꾼다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바꾸겠다는 의미”라면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않으며 이 전제가 지켜지지 않는 한 사회정의도 경제민주화도 민주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표했다.

    추미애 후보도 15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새 강령에 대해 “노동자가 사라진 당 강령 개정을 강력 반대한다”며 “우리당 강령에서 노동자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은 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당의 모태는 2012년 민주당과 한국노총, 시민사회세력의 통합으로 시작됐다. 노동부문 대의원과 정책당원제를 도입한 이유도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함”이라며 “노동의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은 우리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이종걸 후보 역시 대변인 논평을 내고 “노동자’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재검토돼야 한다”면서 “강령정책 분과위에서는 ‘노동자’가 삭제된 것은 노동자가 ‘시민’과 ‘국민’의 개념 속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런 주장은 ‘노동자’를 명기하는 것이 강령 문구상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당의 지향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의미를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서울시당위원장 후보로 나선 김영주 의원, 여성위원장 겸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 양향자 후보, 최재성‧정청래‧김현‧김용익‧최민희 의원 등도 ‘노동자’ 문구를 삭제한 새 강령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별 다른 쟁점이 없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후보들이 새 강령을 이슈화해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사태를 축소‧폄훼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노동자’ 문구를 삭제한 당 강령을 어떤 이유로, 누가 주도해 삭제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김종인 대표는 15일 <연합뉴스>에서 새 강령에 반대 입장을 표한 당 대표 후보들에 대해 “다른 특별한 정책을 얘기할 게 없으니 그런 걸 가지고 선명성 경쟁하듯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대표의 ‘우클릭’ 행보는 향후 대선 국면에서도 정체성 논란을 자초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새 강령 논란은 ‘사드 찬성론자’인 김 대표가 집권 가능성을 이유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것과도 맥락이다. 김 대표 입장에선 지지층 확대 전략이라고 하나, 당내에선 집권을 위해 당의 정체성까지 흔드는 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반발도 심하다. 민주노총은 14일 성명을 내고 “단순한 문구 삭제가 아니다. 그 본질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권교체를 위해 노골적으로 우향우 노선을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정권교체에 눈이 먼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지 한심한 노릇”이라며 “차라리 새누리당 내 개혁적 분파들과 손잡고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을 통해 정권교체하는 편이 훨씬 더 빠른 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017년 대선에서 노동자들이 정권교체를 위해 무조건 야당을 지지할 거란 오판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접기 바란다”면서 “최소한의 노동권리 요구조차 담지 못한다면 정권교체가 아니라 세력교체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

    한국노총 역시 16일 성명을 내고 “운동권 정당 이미지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층이 확대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정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중도 이미지만 강화해 정권창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은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잃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계속해서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고, 가장 큰 지지층인 노동자를 부정하는 행보를 계속한다면, 더불어민주당 정권 재창출에 노동자 지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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