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한 명을 잃은 사연
    [정치와 삶] 새로운 관계와의 만남
        2016년 08월 16일 10: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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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나경채 공동대표의 칼럼 ‘정치와 삶’ 연재를 시작한다. 나 대표는 이전 관악구의원 시절 의정활동에 대해 레디앙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의정 분야 만이 아니라 생활과 삶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정치 이야기를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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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불볕 더위다. 며칠 전, 너무 더워서 자정이 지난 시간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래도 밖은 바람도 좀 불고 선선했다. 슬슬슬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시원한 맥주가 한 잔 마시고 싶어졌는데, 에어컨 없는 집에서 맥주를 마실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 호프집에 가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노래방. 눈앞에 보이는 2층의 노래방에 갔다. “사장님, 방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7만원을 내란다.

    눈을 크으게 뜨며 “네에?” 하는 격렬한 리액션을 보냈더니, 아가씨 한 명 부르실 거 아닌가요? 라며 태연하게 되묻는다.

    찝찝한 마음에 그냥 나와서 더 걷다가 이번에는 지하에 있는 좀 더 허름해 보이는 노래방에 갔다. 똑같이 말했다. 사장님은 미안한 얼굴로 우리 가게에는 아가씨를 부를 수 없다고 한다. 나는 맥주 두 캔과 노래방 1시간으로 2만 6천원을 내고 시원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나쁜 노래방과 착한 노래방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들의 영업 형태 차이는 과태료 처분을 할 때나 의미가 있을 뿐이다. 특정 성을 일상적으로 상품화하고 대상화하는 사회구조라는 측면에서 두 노래방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정치는 이 지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새삼스럽지만 메갈리아를 부른 현실은 너무나 가깝고 일상이었다.

    결혼이주여성

    결혼이주여성의 노동인권 실태 관련 교육 자료사진(사진=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지방의원이던 시절 우리 지역위원회에 새로 입당한 당원이 있었다. 그는 입당의 변에 ‘당의 이주여성 정책이 훌륭해서’라고 적어 놓았었다. 특이했다. 홈페이지에서 그 분야의 정책을 찾아보는 것은 열성당원에게도 쉽지 않을 일이었으니까.

    그를 만나 사연을 들었다. 그는 꽤 많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그가 종사하던 분야에 대기업 진출이 허용되면서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했다. 사업이 잘 되던 때에는 매주 필리핀으로 놀러 다녔는데 그때 거기서 만난 필리핀 여성과 연애를 했고 결혼도 하게 되었다. 인형같이 예쁜 딸도 생겼다. 그 딸이 커가니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 생활과 언어에 아직도 서툰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그는 당 지역위원장이기도 했던 나에게 아내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그의 입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와 그녀와 나는 이주여성 커뮤니티를 만나기 위한 계획도 세웠었다. 정치적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그녀도 매우 친절했고 잘 부탁한다며 여러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오후에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I’m sorry but come here right now plz.’

    아이가 다쳤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초인종을 눌렀고 그녀가 아닌 그가 나왔다. 그는 화가 나 있었고, 내게 보내주었던 평소의 친절한 눈빛도 아니었다. 그는 내게 여자 혼자 있을 남의 집에 왜 왔냐고 따졌다. 살짝 열린 문 안으로 쓰러진 듯 비스듬히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고, 울고 있는 아이의 울음도 들려왔다.

    아무 설명이 없었지만, 순식간에 상황이 파악되었다. 그를 진정시켜 집안에 들어갔다. 부부싸움을 했다고 한다. 그는 좀 밀었다고 했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고 울고만 있었다.

    필리핀 그녀의 집에 가기로 한 날인데 오랜만에 가는 길이라 그녀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이것저것 샀다. 짐이 많아져서 가방의 부피가 커졌는데, 사업이 어려워진 그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화가 났고 가방의 짐을 다 뒤집어 엎어버렸다. 필리핀행은 취소되었다. 그녀는 따졌고 그는 그녀를 엎드려 울게 했다.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나가라고 했고 나는 몇 마디 말을 남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한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다. 상담사는 그녀의 이름을 대며 아는지 물었고 그녀가 상담하러 왔는데 나를 불러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주저 없이 뛰어갔다. 그녀는 또 울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나를 부른 것 때문에 더.

    아이는 강원도의 시댁에 맡겨졌으며 그가 이혼을 요구했다고 했다. 이혼을 하면 그녀는 한국에 더 있을 수 없다. 아직 국적 취득을 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 얘기를 들었고 그 얘기는 그가 나에게 했던 연애와 결혼스토리와는 상당히 달랐다. 그녀를 위로했고 상담선생님에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바를 말해드리고 나왔다.

    그날 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더욱 흥분한 목소리로 ‘왜 남의 여자를 밖에서 만나느냐, 당의 지역위원장은 그래도 되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화를 냈다. 그녀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던 것은 당신이었고 나는 내 친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도 했고 당신도 차분히 상담을 받아보라고도 했다.

    또 며칠이 흘렀다. 나는 내가 일생에 받은 문자메시지 중에 가장 긴 영문 메시지를 그녀에게 받았다.

    친절에 감사했으며 덕분에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들의 문제는 충분히 해결되었고 그와 많은 대화를 했는데 앞으로는 나와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말미에는 자신 때문에 나와 남편의 우정이 훼손되어 너무 미안하다고도 했다.

    나는 당원 한 명과 친구 한 명을 잃었다. 적잖게 괴로웠고 나 자신에 대해 언짢아졌다.

    두 달 쯤 뒤에 그에게 연락이 왔다. 동네에서 점심이나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말은 없었다. 다만 정수기를 한 대 들여놓으라며 새로 시작한 일을 소개했다.

    그 후 이주여성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그녀를 본 적이 있다. 다행이었다. 그녀는 나를 아는 척 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나 우리 당과 정치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곳 한국에서 그냥 그의 아내로만 존재하는 듯했다.

    그는 나 혹은 당과의 관계에서 생존했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는 거울 밖의 실재를 솔직하게 응시하자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항상 구래의 합의에 대해 적대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된 새로운 주체와의 새로운 계약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급진성과 역동성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가부장 사회에 적대적 이해관계를 갖고 등장한 여자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태도를 정할 때이다.

    계약을 요구하는 방자한 태도를 이유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거절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테이블에 앉을 것인지 말이다.

    필자소개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 전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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