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오군란의 대차대조표
    [조선생의 역사이야기]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따져야
        2012년 08월 06일 09: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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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알다시피 임오군란은 구식군인들이 신식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 열받아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이야기에 외울 것이 달라붙습니다.

    임오군란의 결과 맺은 조약은 제물포 조약이고, 그 내용은 머머머이고, 그 결과 청의 영향력이 강화되었고, 이 때 일본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게 되었는데, 그게 나중에 갑신정변의 텐진조약은 10년 뒤 청일전쟁의 근거가 되었다 등등등…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하나둘이 아닙니다. 우선 이런 생각 안들어요? 구식군대야 열받아 반란을 일으켰다지만, 그럼 신식군대 별기군은 이 때 뭐했는가?

    신식군대 별기군은 임오군란 때 뭐했는가?

    임오군란은 구식군인들에게 월급을 13개월이나 주지 않다가 겨우 한달 치를 주는데, 쌀과 겨가 반반이어서, 구식군인들이 열받아 일으킨 것입니다. 신식군대인 별기군에게는 월급도 착착 주었고, 제대로 주었고 더 많이 주었고, 결국 대우가 좋았는데, 자신과 차별대우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구식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면, 그것도 신식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 항의해서 반란을 일으켰으면, 당연히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이 임오군란을 진압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임오군란을 진압하는 것은 뜻밖에도 청나라 군대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지요?

    아, 맞아요. 답은 간단하지요. “별기군은 양반자제들만을 받아서 그랬다. 양반 자식들이 제대로 싸울 리가 있겠느냐? 다 도망갔겠지…” 맞습니다.

    하인에게 업혀 훈련까지 했다는 신식군대 별기군의 모습

    어느 자료를 다 찾아보아도 임오군란 때 별기군이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긴 별기군이 80명이었으니 맞서 싸우기에는 무리였겠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민비가 고향인 충주로 도망갈 때 호위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별기군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심지어 훈련을 할 때 자기 집 노비들이 업고 뛰었다는 기록이 있을 지경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어요?

    구식군인들의 불만과 희망

    구식군인들은 자신들의 월급을 미루고 띵까먹은 선혜청 당상관인가 하는 민비의 개화파 친척 실세를 죽입니다. 이름이 민겸호였던가? 합니다. 이 민겸호는 별기군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열받아서 민비의 친척이자 당상관을 죽였으니, 구식군인들의 모가지가 성할 리가 없겠지요. 구식군인들은 대원군을 찾아가 읍소합니다.

    저는 이 구식군인들이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이 구식군인들이 바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프랑스 군과 미국 군을 물리친 그 역전의 용사들 아니겠어요?

    청나라조차 영국과 프랑스에게 수도인 베이징이 함락된 게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일인데, 조선이 프랑스와 미국을 맞서 격퇴시킨다는 게 당시의 당사자들로서는 얼마나 두려우면서 가슴떨리고 짜릿짜릿한 일이었겠습니까? 구식군인들에게 대원군은 믿음직한 지도자였을 겝니다. 대원군은 구식군인들의 희망이었습니다.

    대원군은 자신의 심복을 구식군인으로 변장시켜 진두지휘하게 하고, 이 때부터 본격적인 쿠데타 분위기가 됩니다. 그 후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하고, 포도청과 의금부를 습격하여 갇혀있던 척사론자를 풀어주고,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불태웁니다.

    궁궐까지 습격을 하는데, 민비는 궁녀복으로 갈아입고 고향인 충주로 피신합니다.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별기군을 폐지하고, 개화정책의 핵심기구였던 통리기무아문을 폐지합니다.

    청군이 들어와 조선을 식민지 대하듯

    민비는 고향인 충주로 도망가면서도 그 민첩한 잔머리를 굴립니다. 청나라에 SOS를 친 거지요. 청나라는 옳다구나 하면서 군대를 보냅니다. 자기를 형님으로 모시는 조선에서 군사정변이 일어났으니, 이를 처리한다는 거지요. 청나라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임오군란이 종료하고 대원군이 집권한 뒤였습니다.

    이 때 인천에 들어온 청이 대원군을 납치한 이유는 일본을 달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은 자기나라 교관이 죽었다는 이유로 군함을 보내 조선을 협박했거든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대원군은 워낙 기가 세고 대차니까, 다루기 만만한 민비를 청이 선호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미 청나라는 문호개방을 하고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구호 아래 양무운동을 벌이고 있는 때이니, 이와 노선이 비슷한 동도서기(東道西器) 입장의 민비를 지원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리고 이 때 들어온 청의 위안스카이가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조선을 식민지 다루듯 하고 온갖 내정에 다 간섭하고 특히 청나라 물건 판매에 열을 올리게 되는 걸로 보아, 청이 서양의 제국주의를 흉내내며 국력을 과시하고 키우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임오군란으로 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엄청 확대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개화를 하고 서양을 따라가던 일본이 조선과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고 조선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확대해왔는데, 이를 일거에 뒤집고 회복하였습니다.

    일본은 제물포조약으로 교두보를 확보하고

    여기서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게 제물포조약입니다. 일본은 임오군란으로 일본인 교관이 살해당하고 일본 공사관이 불탔다고 항의합니다. 일리가 있지요. ‘조선 니네 나라 군대 가르쳐주러 간 일본 사람을 조선 구식군인들이 죽였으니 책임을 져라’는 것이지요.

    제물포 조약의 내용은 조선이 일본에 50만원인가를 손해배상하고, 일본 공사관을 지키기 위한 일본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할 말 없습니다. 조선에 있는 일본 사람을 조선이 지켜주지 못했으니, 앞으로 조선에 있는 일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일본 군대가 조선에 주둔을 한다는 거지요, 허 참… 그래서 1개 대대 병력이 조선의 일본 공사관에 주둔하게 됩니다. 청나라 위안 스카이는 3천명을 이끌고 와서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그냥 눌러 앉고요.

    아니, 청은 일본을 견제하려고 했으면 제물포 조약 정도는 힘으로라도 막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민비는 청의 도움으로 다시 권력을 잡았으면 청에게 제물포조약은 막아달라고 떼라도 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청은 조선에서 지껏 다 챙겨먹고, 조선에 일본군이 주둔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보고만 있는 겁니다.

    일본은 제물포 조약으로 군대주둔을 인정받고, 2년 후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 바로 이 군대로 청군과 교전을 하고는 텐진조약에서 청일 양국군대 철수와 파병시 사전 양해를 이끌어 냅니다. 그리고 10년 후 동학농민운동 때 청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구실로 청일전쟁을 시작하지요.

    이 모든 걸 미리 예견하고서 군대주둔을 따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청에게 주도권을 넘기고 퇴각하는 분위기에서도 교두보는 마련하는 모습을 보면, 그 영악함에 무섭기조차 합니다.

    임오군란의 대차대조표

    결국 임오군란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세력별로 다시 정리해볼까요?

    임오군란을 일으킨 구식군인들은 완전 헛발질했습니다. 처음에는 열받아 일으켰다가, 대원군 믿고 쿠데타로 발전해서 잠시 자신들의 한을 푸는 듯 했으나, 청군이 들어와 대원군을 잡아가고나니, 쥐죽은 듯 입을 다뭅니다.

    이들이 정말 대원군을 지지했다면, 대원군을 잡아간 청에 항의하여, 청군과 일전이라도 벌여야 했을 겁니다. 구식군인들에게 여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까요?

    대원군은 뭐한겁니까? 구식군인들의 희망과 백성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잠시 권력을 잡았는데, 청에게 홀랑 잡혀가고 맙니다. 대원군은 청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대원군 역시 청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이 조선을 식민지 대하듯 하려 한다는 사실은 당연히 생각도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청이 대원군 자신을 잡아갈 수도 있다는 것조차 눈치를 못챈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원군이 자신의 재집권을 인정받기 위하여 청군을 요청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비가 요청하여서 왔건, 대원군이 요청하여서 왔건, 대원군이 청의 의도와 본질을 깨닫지 못한 건 분명합니다.

    민비는 뭐한겁니까? 구식군인들의 반란으로 잠시 권좌에서 물러났다가 청의 도움으로 다시 권력을 잡았다는 것 이외에는 변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청에게 조선의 경제를 침탈할 권한을 넘기고, 위안스카이가 조선 정치를 주물럭거리는 권한을 내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제일 바보같은 짓을 했습니다.

    민비는 이 사건 이후, 구식군인들의 마음을 돌리고 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어떤 정책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더 미워했겠지요. 그러나 이는 구식군인들의 충성심을 조선의 힘과 자산으로 만드는 것에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민비는 구식군인이 아니면 신식군인이라도 키워야 하지 않았겠어요? 민비는 청의 도움으로 권좌에 복귀한 후, 청나라식으로 군대를 키웁니다. 이른바 ‘청별기’라고도 불리우지요. 참으로 어이없는 건, 이 청별기 역시 일본식 별기군인 왜별기처럼 명목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별기는 구식군인들의 반란 때 맞서 싸우지도 않았고, 민비를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민비가 새로 키운 청별기는 달랐을까요? 청별기군은 1884년 갑신정변 때, 쿠데타를 일으킨 김옥균 쪽 부대와 싸우기는 하지만, 결국 청나라 군대가 출동하여 3일천하를 진압하게 됩니다. 더구나 10년 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동학군에게 패배합니다.

    이에 비하여 청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서 영향력을 극도로 확대하고 일본의 영향을 차단합니다. 일본은 청에게 밀리면서도 군대주둔을 따냅니다.

    우리끼리 싸우다가 외국의 영향력만 확대되는 꼴

    결국 대원군과 민비가 구식군인들의 반란을 계기로 서로 권력을 잡겠다, 지키겠다고 싸우다가, 청과 일본의 힘만 키워준 꼴이 되었습니다. 구식군인도, 대원군도, 민비도 아무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구식군인들의 불만과 충성심은 조선에 어떤 긍정적인 자산으로 작용하지도 못했습니다. 왜 다 큰 어른들이 이런 한심한 일을 하느냐고요?

    천안함 사건의 대차대조표는 무엇인가?

    이런 일이 그 때만 일어난 건 아닙니다. 우리는 남과 북이 갈려서 서로 전 세계에 서로를 비난하며 주도권을 잡기 위해 외국의 영향력을 확대시켜왔습니다. 북한의 위협을 진정 걱정한다면 우리 국방력을 키워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미국에게 핵무기를 우리나라에 배치해달라고 조르는 식입니다.

    이게 1957년 경에 일어난 일인데, 당시 일본은 미국이 일본에 배치한 핵무기를 빼가라고 난리치고 있던 때입니다. 결국 미국은 일본의 핵무기를 빼다가 한국에 배치합니다. 자주국방은 말뿐인 셈이지요. 핵무기의 배치와 사용 권한은 미국에 있으니까요.

    천안함 사건 기억하나요? 이 사건을 두고 남은 북이 일으킨 것이라 하고, 북은 남의 자작극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그 이후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이 서해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중국과 러시아가 이에 맞서는 합동 군사훈련을 동해와 서해에서 벌였습니다. 우리나라 동해와 서해에서 누구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나요? 이 군사훈련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하자고 하면 하고, 우리가 하지말자고 하면 그만둘 것으로 보이나요? 만약에 서해에서 또다시 천안함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나요? 그 결과 이득은 누가 취하게 될것으로 보이나요? 이제 천안함 사건의 대차대조표가 그려지나요?

    우리의 현대사는 무슨무슨 사건이 일어나고 그에 대해 잘했다, 잘못했다는 비난과 평가에 여념이 없고, 그 비난과 평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늘 ‘상대방이 잘못했다, 나는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서 대차대조표를 재구성해보면, 우리가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려고 얼마나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 지가 보입니다.

    오늘의 결론은? 첫째는 무슨 사건이 생기면 흥분부터 하지말고, 이 일로 이득보고 손해보는 건 누구인지 대차대조표를 그려본다. 둘째는 외부 세력을 불러다가 내 집안의 상대방을 협박하는 것처럼 바보짓은 없다. 이상입니다. 정신들 바짝 차리고 삽시다.

    * 여기까지는 수업 때 하는 이야기이지만, 요즘 진보정당 사태를 보면 남 탓할 일도 없다. 이 일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그려질까? 걱정된다.

    필자소개
    한때 전교조 중앙에서 교선실장을 했었고 또 오랫동안 전교조 서울남부지회 지회장을 맡았다. 지긍은 영림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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