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과 메갈리아 사태
    [기자수첩] 프레임에 갇힌 건 오히려 당 지도부 아닐까?
        2016년 07월 30일 03: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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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내 소위 ‘메갈(리아) 사태’가 집단 탈당사태까지 불러올 만큼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당 안팎으론 당이 ‘두동강’이 날 위기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태의 흐름은 이렇다. 지난 19일 게임 업체 넥슨이 성우 김 모 씨가 메갈리아에서 공동구매한 티셔츠를 입고 인증샷을 올렸다는 이유로 자사에서 유통하는 게임에서 김 씨의 목소리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고, 20일 문예위는 정치적 성향 때문에 김 씨의 ‘노동의 결과물’을 삭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논평을 낸다.

    지난 2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논평이 여성혐오에 대적하기 위한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일부 당원들이 문예위 논평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냐’고 비판했고 지금은 이 논란이 정의당이 ‘메갈당이냐, 아니냐’ 까지 확대됐다.

    당 지도부는 결국 이 논평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린다. 철회 이유는 내용상엔 문제가 없지만 절차상 문제가 있었고 의도와 달리 논쟁만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후 당 지도부의 논평 철회를 비판하는 일부 당원들의 연서명이 이어졌고 심상정 상임대표는 (어떠한 목적인지는 불분명하나) 입장문을 냈다.

    메갈

    문예위 논평은 정말 ‘반메갈 대 친메갈’의 문제인가

    당 지도부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선 후에도 문예위 논평에 반대 입장을 가진 이들과 찬성하는 이들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논평에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은 문예위의 논평은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에 관한 문제일 뿐 메갈리아에 대한 옹호와 연결 짓는 것은 과하다는 취지인 것으로 읽힌다. 더불어 메갈 사태로 인해 당 내 여성주의가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를 밝히기도 한다. 실제로 당게시판엔 논평에 찬성한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이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 혐오집단까지 옹호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논평에 반대하는 이들은 ‘일베와 같은 혐오집단인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것이냐’, ‘그래서 당신은 메갈이냐 아니냐’, ‘그리고 이 당은 메갈당이냐 아니냐’ 등의 질문 혹은 공격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여성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메갈리아라는 혐오집단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우선 지금은 삭제된 문예위 논평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논평의 요점은 “개인의 정치적 의견은 그 개인의 직업 활동을 제약하는 근거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이유로 직업활동에서 배제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노동자 개인의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노동의 결과물을 (출연료 지급 여부와 별개로) 삭제한 한 게임회사의 결정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힌다.

    문예위는 논평에서 메갈리아를 옹호한다고 밝히지 않는다. 사실 이 논평에선 메갈리아 여부는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는다. 사용자는 문화예술노동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노동의 결과물을 마음대로 주물러선 안 된다는 ‘보편적인’ 주장을 할 뿐이다.

    이 때문에 문예위의 논평으로 시작한 정의당의 메갈 사태의 핵심은 혐오발언에, 혐오집단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어야 한다. 일베든 메갈이든(두 집단은 같은 선상에서 두고 볼 것이냐는 논쟁은 논외로 치고) 노동자 개인이 특정 집단에 속해있고 그 집단을 지지한다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동의 결과물을 폐기해버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를 논해야 한다.

    시간의 흐를수록 정의당의 메갈 사태는 친메갈과 반메갈의 대립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논평 철회, 반대 연서명 그리고 지도부의 변명
    논쟁이 두려운 지도부…갈수록 첨예해지는 대립

    당 게시판엔 거두절미하고 ‘너는 메갈이냐’, ‘당은 메갈당이냐’, ‘그래서 메갈을 옹호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파다하다. 일부는 자신의 신념(페미니즘)을 위해 극단적 혐오집단까지 옹호하는 것이냐는 여성주의 공격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모습은 마치 보수집단들의 ‘그래서 넌 종북이냐’라는 끝없는 추궁처럼 지극히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지켜보던 당 지도부는 상무집행위를 거쳐 결국 25일 문예위 논평 철회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으로 당내 논란은 더욱 확대됐다.

    지도부는 논평 철회 이유로 “이 논평은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라는 수많은 논쟁만 야기시키고, 부당한 노동권의 침해라는 본 취지의 전달에는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이 논평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논평 발표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와 당사자의 합의 등도 문예위의 논평을 철회를 결정하는 이유로 등장했다.

    그러나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라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당 지도부가 이 논평을 철회한 이유는 아마도 “정의당이 친메갈리아인가 아닌가라는 수많은 논쟁만 야기시켰다”는 것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문예위의 논평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보지 않으면서도 논쟁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철회 결정을 했다고 자인한 셈인데, 이는 당원들을 다시 한 번 분개하게 만들었다. 시끄러운 문제는 그냥 덮고 가자는 식의 지도부의 비겁한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해 항의였다.

    일부 여성주의자 당원들을 중심으로 지도부의 논평 철회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연서명을 냈다.(연서명 링크)

    그러자 논평을 반대하는 이들 중엔 연서명에 동참한 이들을 출당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어떤 이는 연서명에 참여한 특정 당원을 겨냥해 그 당원이 속한 집단의 이념을 문제 삼기도 했다. 친메갈 대 반메갈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지도부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이 논쟁에 부채질을 한 셈이 됐다. 친메갈 대 반메갈의 구도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라는 지도부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그 프레임은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김세균 대표는 당 게시판에 “이번 ‘철회’ 결정에서는 기본적으로 논평 내용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당 문화예술위의 이름으로 그런 논평을 낼 만한 사안이었는가가 문제됐다”며 “(페미니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논의를 생산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갈수록 ‘편 가르기’ 식으로 치달은 논쟁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식히는 일정한 휴지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이라고 논평 철회 결정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문예위는 아이돌 연습생의 임금문제 등과 같은 사소한 것으로 보이지만, 너무나 만연해 의식하지 못해온 문화예술노동자 처우의 부당함에 대해 일관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래서 문예위의 논평은 참신하고 따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제와서 ‘문예위 이름으로 그런 논평을 낼 만한 사안인지’가 문제가 됐다? 그 어떤 해명에도 불구하고 사태에 대한 회피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인상은 지우기 힘들다.

    친메갈 반메갈 프레임에 갇힌 지도부…
    명확한 입장도 못 내고 하나마나 한 말만 되풀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심상정 대표의 29일자 입장문이었다(링크). 심 대표는 “당의 하부단위에서 부적절한 논평이 나가고”라며 문예위 논평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궤변 수준의 입장을 내놓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당의 입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원들은 계속 당에 묻고 있는데도 지도부는 애써 답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부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보다, 이 사태로 떠나는 당원들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데만 골몰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다시 김세균 대표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7월 25일의 철회 결정은 이후 당 대외의 친메갈 진영과 반메갈 진영 모두로부터 비판받는 동네북 신세가 됐다. 이런 신세가 된 것은 그 결정의 당연한 결과다.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설령 모두로부터 욕을 얻어먹을지라도 ‘친메갈이냐 반메갈이냐’라는 볼랙홀에서 벗어나 논의의 지형을 바꾸고, 이를 통해 논의를 소모적인 것에서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선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비판들에 개의치 않을 작정이다. 반응하는 것은 우리가 애써 벗어나고자 한 불랙홀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다”며 “논의의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문예위 논평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 그렇게 주장하면 될 일이고 문예위의 논평이 옳다고 판단했다면 그런 입장을 밝히면 된다. 당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 뿐이다. 그 이후 정의당에 대한 지지 여부는 개인 당원이 판단할 일일 것이다. 친메갈 대 반메갈 프레임에 갇힌 쪽은 당원이 아닌, 당 지도부가 아닌가 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김 대표는 이어 “이를 통해 우리는 어려울 지라도 우리의 길을 개척해 나가려고 한다. 친메갈이나 반메갈이냐를 넘어 성평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남녀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당원들이 듣고 싶은 지도부의 입장은 이런 하나마나한, 누구나 아는 얘기가 아니다. 왜 지도부는 문예위 논평이 메갈리아 옹호 여부에 관한 논평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논평을 철회했나, 왜 지도부는 정치적 성향으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하면서도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문화예술노동자의 노동의 결과물이 폐기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못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다.

    당원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당이 첨예한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쉽게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번 이런 식으로 (중식이 밴드 사건 때도 마찬가지로) 유야무야 논쟁거리는 덮고 가자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고, 특정 사안에 명확한 입장도 내지 못하고, 또 그러한 지도부의 무능을 마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포장한다면 논평에 찬성하는 이든, 반대하는 이든 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을 지지할 이유는 사라진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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