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년 꼴찌의 선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이유
    [왼쪽에서 본 F1] 강팀 의존과 독립팀 생존의 간극
        2016년 07월 19일 08: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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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은 매우 불공평한 스포츠입니다.

    이전 칼럼에서 심심하면 한 번씩 언급했던 것처럼 F1은 여러모로 상당히 불공평합니다. 강팀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스포츠가 움직이고, 약팀들을 기를 펼 수가 없습니다. 상위권과 하위권의 구도가 바뀌는 일은 사실상 일어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경제 문제나 국제 정치의 문제와 자주 비교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권에서 중상위권 팀들을 위협하는, 이른바 ‘언더독’의 활약을 보는 것 역시 분명 F1의 재미입니다. 팀의 규모도 작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든 소형 팀들이 하위권에 몰려있고, 이들이 간혹 중상위권 팀을 넘어서는 성적을 내면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대부분 ‘늘 이기는 사람’이 이기겠지만, 간혹 그 균형이 무너질 때 큰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형 팀 중엔 1년에 단 1포인트를 얻지 못하는 팀도 있습니다. 1등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생각으로 스포츠를 접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F1의 만년 최하위 팀에겐 어떤 희망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22명이 레이스를 시작해 단 열 명만 포인트를 얻는데, 큰 문제만 아니면 포인트를 가져가는 3강 팀의 여섯 자리를 빼고 중상위권에서 나머지 네 자리를 또 나눠 가지면 하위 팀에겐 아예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만년 하위 팀에서 포인트를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모든 팬이 바라는 언더독의 반란입니다.

    지난 7월 초 펼쳐진 2016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부동의 만년 최하위 팀 매노어 소속의 파스칼 베를라인이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10위로 레이스를 마친 것이 확인되자, 매노어 팀의 많지 않은 팀원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차지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2015시즌에는 단 한 번도 포인트를 딴 적이 없었고, 올해도 포인트와는 거리가 멀었던 매노어였기 때문에 베를라인의 포인트 피니시는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언더독의 반란을 바라는 많은 팬들도 이 장면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언더독의 반전 드라마를 기대했던 필자는 이런 ‘만년 꼴찌의 선전’이라는 소식이 꼭 기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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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에 처음으로 포인트 획득에 성공한 매노어

    오스트리아에서 포인트 피니시에 성공한 매노어는 상당히 어려운 시절을 겪었습니다. 당시 ‘마루시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매노어는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도 상태가 되었고, 비행기 삯을 내지 못해 바다를 건너는 그랑프리에 출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팀의 건물과 자산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몇 달 동안 임금이 밀렸던 상당수의 인력이 팀을 떠났습니다. 거의 다 떠났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죠.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팀이 지난해 1월을 지나며 간신히 부활에 성공했고, 매노어라는 새 이름과 함께 간신히 2015시즌 첫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출전의 기쁨도 잠시, 매노어의 타이틀로 출전한 첫 경기에선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조차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F1 레이스카의 엔진에 시동을 거는 것은 일반 자동차와 달리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시즌 전반기에는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이 다행인 수준이었고, 성적은 다른 하위권 팀과도 비교하기 힘든 수준으로 형편없었습니다.

    그랬던 매노어가 2016년을 맞아 달라졌습니다. 이제 더는 하위권 팀들이 매노어를 ‘당연히 더 느린 팀’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됐고, 실제 몇 개 그랑프리에선 다른 하위권 팀들을 가볍게 앞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간혹 팀의 성향과 잘 맞는 곳에서 레이스가 펼쳐지면 하위권은 물론 중위권 팀과도 비슷한 속도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일을 낸 것입니다.

    꼴찌의 반란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매노어의 선전은 박수를 치고 축하해줄 일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올해 갑자기 매노어가 괄목상대할 성장을 이뤄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단 매노어의 급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배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재 F1에서 가장 강력한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엔진과 에너지 재생과 관련된 여러 부품과 모듈)을 채택한 것의 도움이 컸습니다. 파워 유닛 자체의 힘만으로도 다른 팀보다 한 바퀴에 0.5초에서 1초 정도는 더 벌 수 있다는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공급받아 사용하게 되면서 매노어는 직선 가속 구간에서 가장 빠른 팀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윌리암스 기어박스와 리어 서스펜션 채택입니다. 파워 유닛 못지않게 중요한 기어박스를 현재 F1의 최대 팀 중 하나인 윌리암스로부터 공급받아 그대로 사용하고, F1에서 더없이 중요한 뒷바퀴 부근 공기 흐름과 뒷바퀴 타이어 접지력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리어 서스펜션까지 윌리암스의 것을 사용합니다. 윌리암스 역시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을 공급받아 사용하는 팀이기 때문에, 크게 혼란이 생길 부분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메르세데스와 윌리암스의 후광이 단순히 부품 몇 개 공급받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매노어의 급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2년 만에 팀에 첫 포인트 피니시를 선물한 파스칼 베를라인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매노어에서 활약하지는 않았을지 모르는 F1 최대의 기대주이자 유망주 루키입니다. 그런데 베를라인을 키우고 있는 것이 메르세데스이고, 메르세데스 파워 유닛 공급 계약과 맞물려 베를라인이 매노어에서 생각보다 이른 F1 데뷔를 한 것입니다.

    수준 높은 드라이버가 차에 오른 것뿐 아니라, 메르세데스와 윌리암스의 기술 지원도 매노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소형 팀인 매노어가 기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적은 인력 중 상당수가 경력이 짧아 노하우가 적을 수밖에 없지만, 메르세데스/윌리암스의 기술 지원을 통해 이런 노하우를 상당 부분 해소했기 때문에 팀의 전체적인 전력은 크게 상승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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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강자 메르세데스와 대비되는 자우버의 끝없는 추락

    다 좋은 얘기입니다. 최하위권 팀이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비용도 적게 드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한 덕분에 메노어는 성적이 향상됐고,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페라리로부터 가능한 모든 기술지원과 부품 공급을 받아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신생 F1 팀 ‘하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F1에서 살아남고 더 효율적으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자우버의 경우와 비교해 본다면 어느 정도 씁쓸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우버는 이미 팀의 역사가 20년이 훌쩍 넘는 중견 팀이지만, 팀의 규모 면에서는 소형 팀으로 분류되는 독립 팀입니다. 파워 유닛과 기어박스는 페라리로부터 공급받지만(자신들의 파워 유닛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팀은 페라리, 메르세데스, 르노까지 세 팀뿐입니다), 나머지 부분에선 ‘독립 팀’답게 모든 부분을 스스로 준비합니다. 다소 비효율적이고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독립 팀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자우버의 추락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독립 팀이라서, 단순히 소형 팀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독립 팀으로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자우버는 조금씩 전력이 하락해 올 시즌에는 최하위권을 맴도는 팀이 됐고, 매노어가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포인트를 획득하면서 문자 그대로 ‘꼴찌’로 추락했습니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팀원에게 주어야 할 월급까지 몇 달씩 밀리는 심한 경영난까지 겪고 있어, 언제 ‘정상적인 모습’을 회복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매노어의 성공과 자우버의 몰락을 다소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이런 명제가 성립할 수도 있습니다. ‘강팀에게 많이 의지한다면 성공할 수 있지만, 독립 팀의 명분을 지킨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스포츠로 보았을 때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종종 F1의 이야기가 실제 사회, 경제나 국제 정치와 상당히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강대국에 의지한다면 잘 살 수 있지만, 독립 국가의 지위를 지킨다면 망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간단히 넘어가기엔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얘기까지 나가는 것은 좀 비약이 심할 수 있지만, 무리해서 비유를 하자면, ‘어쩔 수 없으니 친일을 했다’는 얘기가 그다지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할 일이 있고, 못 할 일이 있습니다. F1에서 ‘독립 팀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못 할 일’을 정확히 선을 그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자우버의 운신의 폭이 좁은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F1 세계의 질서는 더욱더 자우버와 같은 독립 팀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독립 팀은 일단 생존 자체가 쉽지 않은데, 하스에 이어 매노어까지 강팀에 ‘다소 과하게 의존’하는 모습으로 좋은 성과를 낸다면, 단기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독립 팀이 독립 팀답게 남아 있어서는 얻을 것이 없으니, 세계 질서의 대세에 편승해야 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F1 세계의 질서가 소수의 대형 팀들 손바닥 안에서 좌지우지되는 이상, 자우버와 같은 소형 독립 팀의 미래에는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딱히 매노어와 같은 언더독의 선택이 문제라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절대 강자들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매노어가 이뤄낸 성과 자체로는 기쁜 마음을 가집니다. 다만 전체적인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독립 국가가 모두 강대국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버리는 것이 세계의 질서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적어도 2016년 7월 현재로써는 ‘분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더 안타깝습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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