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지진'
성주의 사드 반대 시위
    2016년 07월 18일 03: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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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드의 배치를 둘러싼 한국에서의 상황 전개를 보면 정말 일종의 “정치적 지진”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평생 “데모”와 인연이 없어온 성주군민들이 돌연히 열성 “데모꾼”이 되고, 새누리당 계통의 지역 권력자나 유지마저도 “감히 주상마마의 말씀에 거역하는” 자세를 취하고, 한 순간에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정권과 민중 힘겨루기의 중심이 되고…

여태까지 섬겨왔지만 이제는 지역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뜯겨지는 박근혜의 대형 사진은 이 정치적 지진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1979년 부마사태의 상징은 바로 부산의 길거리에서 불태워지는 박근혜 부왕 마마의 사진들이었거든요….

성주

이 상황을 보면, 정말 “진리의 순간”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죠. 즉, 여태까지 우리가 당연시해온 어떤 너무나 기초적인 부분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제야 충격적으로 깨닫게 되는 셈이고, 우리를 규정해온 어떤 관계의 진면목을 이제야 직시하는 셈입니다.

사실 여태까지의 “대한민국의 성장/발전”은 미국이라는 한국적 삶의 상수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단, 우리가 되도록이면 이 부분을 생각 안하려고 한 것이죠.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극우들의 말은, 가치평가의 부분을 제외하면 사실 그 자체로서는 나름 진리성은 있습니다. 1950년 6~7월의 미국의 군사 개입이 아니었다면, 한반도에서의 보수적인 옛 친일관료/자본가들 치하의 국가는 전쟁 과정에서 자연 소멸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미국은 말하자면 “대한민국 프로젝트 지속”에 크게 투자해서 분단선을 유지시키고 이남의 정권을 살려낸 것이죠.

그 다음에는 약 1971년까지 미국이 무상원조와 각종 지원의 형태로 대한민국의 지속과 경제성장에 그 당시의 가치로 약 13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미국 은행들이 직접 해주거나 알선한 차관 이외에도 말씀이죠.

아마도 그것보다 더 큰 “은혜”라면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에 각종의 망국적인 – 그러나 미 자본에 너무나 유리할 수 있는-“자유무역” 따위를 강요하지 않은 것이죠. IMF 사태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의 금융권은 외국자본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으며 일반 산업자본도 외국으로부터의 적대적 인수합병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 차단돼 있었죠.

1980년대 말까지는 대한민국은 사실상 관치 경제와 보호무역의 혜택을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시장으로의 외국 소비재 유입도 규제돼 있었고, 은행들도 사실상 국유화돼 있었고, 5개년 계획들이 실시되곤 했고…이런 정책 아니면 그 어떤 경제개발도 당연 불가능했겠지만, 이런 정책으로 말미암아 나름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미국 자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상식적 경제 정책을 실시해도 된다는 특혜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한국에 대한 미국 특혜의 비밀은?

비결은 “지정학적 위치”와 “전쟁국가로서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미국이 부여한 혜택(원조, 차관 등)과 허락한 특권(상식적인 국가 주도의 보호주의 정책 실시의 가능성)의 대가란, 60만 육군이 언제나 미-일의 이해관계를 위해 “대륙세력”과의 무장 갈등에 들어갈 수 있는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었습니다. 단 “대륙세력”의 정체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죠.

70년대 초반까지 아마도 주로 북한이었다면 현재로서는 미-중 갈등에 있어서의 미국의 전략적 교두보로서, 그리고 미군의 총알받이로서 한국과 한국 군대가 각각 기능해야 할 셈입니다. 사드 배치는, 이 진리에 눈을 뜨게 하는 순간이 된 셈이죠. 미군의 하나의 “보조 병력/부서”으로서의 한국 국방부/군의 역할도 여실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여태까지 한국을 “키워냈다”면, 그 투자의 기본적인 의도는 바로 한국 군부를 장악해 보조 병력화하여 그 상태에서 한국과 한국군을 유사시에 교두보/총알받이로 이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이해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과연 무엇이든 철저히 계산하는 이 돈의 제국은 대한민국에다가 그 엄청난 재원을 왜 부어주었을까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진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인제 진리를 깨달은 만큼, 정말 3.1운동 때처럼 다 함께, 계층과 지역을 초월하여 “총알받이 되기 거부”, 그리고 “침략 교두보 되기 거부”를 투쟁적으로 벌이면, 분명히 동북아 지역에서의 전쟁 방지에 상당한 국제주의적 기여도 될것이고 “우리 땅/인민 살리기”에도 기여될 것입니다.

제게는, 중국 미사일 밑에서 죽을 총알받이가 되고 싶지 않는 성주군민의 행동은 어떤 커다란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지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한반도를 전쟁으로부터 지켜내는 데에 희망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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