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무시한 교조주의’와
    ‘원칙 없는 현실 추종주의’
    [책]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신카와 도시미쓰/후마니타스)
        2016년 07월 16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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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오랫동안 ‘무엇이든 반대’하는 저항정당으로 존재해 온 것이 일본사회당이 조락한 원인이라고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당이 가까스로 사회민주주의를 선택해 현실정당으로 변신한 결과는 처참했다. 사회당은 왜 실패했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전후 일본 정치 속에서 사회당이 맡아 온 역할은 무엇이고, 현실정당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 정치에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과 다름없다. 이를 확인하려면 시야를 넓혀 정당정치를 넘어서서 계급정치까지 연구 대상으로 포괄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의회주의로, 다시 말해 경제적 분쟁을 정치의 장으로 옮겨 완화하려는 것이고, 따라서 노자의 권력관계를 빼고 사회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___서장에서

    조직되지 않은 노동, 대표하지 못하는 정당이 낳은 두 사회의 닮은 풍경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급격하게 진행된 총평과 일본사회당의 동반 몰락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 노동운동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1980년대 이래 대부분의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조합이 쇠퇴하고 사회주의정당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대규모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정당이 건재해 있으며, 그 밖의 나라들에서도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의 쇠퇴와 위기는 있을지언정 일본의 경우처럼 몰락 혹은 소멸의 상태에 이른 사례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이처럼 보수에 대항하는 좌파 정당이 존재하지 않게 된 정치 무대에서 자민당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일방적으로 독주하며 단행한다.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주변 노동력이 증대했고 소득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다.

    반면 사회당 몰락 이후 등장한 민주당은 이 같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기구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민주당 안에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공감하는 인물 또한 적지 않았다. 건전한 좌우 대립과 정당 간 경쟁이 무너진 일본 정치가 만들어 낸 것은 일본식의 분단 사회였다.

    전후 일본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일본사회당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일본사회당은 일본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1955~93년)에 사회주의혁명을 표방했고, 복지국가에 냉담했을까? 왜 일본 사회당은 서구적인 사회민주당이 되지 못하고 정권 획득의 의사가 없는 저항 정당이 된 것일까?

    나아가,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저항 정당, 반대 정당에서 현실 정당으로 전환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천명했던 사회당은 그렇게 현실정당화를 외치면서 스스로 재정립하는 순간 왜 그토록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을까? 그사이 일본 사회당 안에서는, 그리고 일본 노동계급운동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일본 사민주의

    이념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민주주의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영향 아래 좌파 정당이 활동하고 노동을 조직하는 데 큰 제약이 따랐던 한국과 달리, 한때는 서구와 비견될 만큼 강력한 노조와 사회주의 정당이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일본 사회에서 사민주의 실험이 실패한 이후 자유주의적 정치구조마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에서 현실 사민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했는지, 반면 일본의 사민주의 실험은 어떤 맥락에서 시도되었고, 이를 추동한 사회적 힘 관계는 어떠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사민주의 논의 또한 전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민주의를 서구, 특히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을 차용하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복지국가 사민주의를 이상향으로 간주하거나 급진적(또는 개량적)이라는 이유로 사민주의를 배격하는 입장 또한 적지 않다.

    이처럼 ‘고정화된 관념으로서의 사민주의’를 이야기할 뿐 ‘있는 그대로의’ 사민주의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직시하지 않는 풍토 속에서, “사회민주주의란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의회주의로, 다시 말해 경제적 분쟁을 정치의 장으로 옮겨 완화하려는 것이고, 따라서 노자의 권력관계를 빼고 사회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다.”는 입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노동조합(노동운동)과 정당(정치)의 복잡하고 미묘한 연대구조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면, 현실의 사민주의 체제는 경우에 따라 노동조합 내의 서로 다른 분파들이 사민당 내 서로 다른 분파들과 결합해, 노동 내부를 통제하면서 (중소)자본가 조직과의 정책연합(계급 교차 연합)까지 이끌면서 진행된다.

    또한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스웨덴이나 독일처럼 사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평가되는 사회 못지않게 사민주의 시도가 실패한 사회의 경험이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사민주의가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규명함으로써 다양한 세력이 만들어 낸 동학을 온전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 책의 내용

    총평과 사회당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적지 않은 연구서와 논문, 핵심 당사자들에 의한 회고와 증언의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규모로 진행된 이 운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분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녔다.

    첫째, 연구 대상이 방대한 만큼 연구자가 분명한 입장과 관점에 서서 이론적. 분석적 연구 틀을 분명히 설정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민주의의 관점을 분명히 하는 이 책은, 서구의 권력자원동원 이론을 원용하고, 계급 교차 연합의 분석 틀을 설정함으로써 복잡한 주제를 짜임새 있게 정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접근법을 취한다.

    둘째, 노동운동.노동정치를 둘러싼 내외 환경의 변화를 중시하면서도 분석 초점을 노동운동.노동정치의 틀 속에서 진행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복합적 계급정치에 맞추고 있다. 동일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면, 그 핵심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였는지, 노동은 어땠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셋째, 더 들어가서, 자본은 그 내부에서, 노동은 또 그 내부에서 각각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에 갇히는 대신, 자본 내의 서로 다른 분파들, 노동 내의 서로 다른 분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분파들이 자기 계급 내에서, 그리고 적대계급의 다른 분파와 맺는 관계에서 어떤 전략적 행위를 선택하고 실천했는지를 봐야 한다.

    각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스웨덴 연구를 실마리 삼아 이 책의 준거 틀인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구성한다.

    2장은 일본사회당이 순수한 저항정당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묘사해, 그것이 반사회민주주의로 가는 길과 다름없음을 밝힌다.

    3장은 노자의 권력자원동원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통해 계급정치 수준에서 1955년 체제를 분석한다. 전후 일본의 정치경제 체제는 기업주의적 노자(노사) 화해 체제를 통해 사회민주주의를 우회하는 길이었고, 이때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민당에 대한 반대당, 절대적 야당으로서 기업주의적 자본축적으로부터 배제된 가치와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데서 존재 의의를 삼았다는 것이다.

    4장은 저항정당으로서의 사회당을 지지하고 규정한 총평, 그중에서도 관공노를 대표해 총평의 좌경화와 계급주의 노선을 선도한 국철노조에 초점을 맞춰 좌경화의 배경과 궤적을 분석하고, 국철노조의 쇠퇴가 계급정치 수준에서 1955년 체제의 종언을 뜻하는 것이었음을 밝힌다.

    5장은 계급정치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당의 현실정당화 과정을 분석해, 그것이 사회당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권력자원동원 전략으로 타당했는지를 검토한다.

    6장은 21세기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살피며, 유동적 고용 및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는 경향을 보면 재분배 정치, 즉 사민주의의 원래 의미가 중시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일본의 사민주의 실험 및 그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옮긴이는 일본 노동운동을 정리한 책이 국내에 오랫동안 소개되지 않아 직접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앞서 번역 출간한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기노시타 다케오 지음, 임영일 옮김, 노동의지평, 2011)은 1990년 이후 장기 불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기존의 일본 노동운동을 대신할 방향 및 대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이번에 노동운동 및 정치의 흐름, 즉 (한국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이기도 한) 산별 노조화와 정치세력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분석한 「일본 전후 정치와 사회민주주의」가 소개됨으로써 한국의 독자들도 일본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살펴보며 종합적인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결국 실패한 실험에 대한 기록이다. 일본어판 초판은 1997년 「전후 일본 정치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10년이 지난 2007년 「환시 속의 사회민주주의」로 제목을 달리해 개정증보판이 나왔는데, 이 같은 제목의 변화는 일본의 사민주의 실험이 이제는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체념하는 듯해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옮긴이는 “일본의 노조 운동은 1989년 총평이 무너지고 연합이 세워지면서 일단락되었고, 당 운동은 1990년대 중반 사회당이 무너지면서 매듭이 지어졌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두고 분석적으로 정리한 작업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의 경우 노동운동사나 운동론, 운동의 이념 등을 다룬 단편적인 연구를 제외하고 구조적.역사적인 서술은 없는 실정이기에, 한국보다 한발 앞서서, 그리고 더 큰 규모로 진행된 일본의 사민주의 역사 및 노동운동의 총체적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한국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사정에 밝지 않은 필자로서는 일본사회당 그리고 일본 정치의 비극이 한국 정치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답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보편적 교훈을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현실을 무시한 교조주의는 원칙 없는 현실 추종주의로 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현실에는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미래를 여는 정치에는 원칙과 현실의 긴장을 견딜 수 있는 지성과 의지가 요구된다.” ___한국어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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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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