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법 개정 없으면,
    이정현식 언론통제 또 반복된다
    "녹취록 파문, 곪고 썩은 게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것"
        2016년 07월 05일 04: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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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의 KBS 보도개입 녹취록 파문과 관련해 “통상적 업무”라고 한 이정현 전 홍보수석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해명이 오히려 현 정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이 전 수석이 ‘정부 비판 기사를 자제하라’며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을 몰아 붙였던 것처럼 다른 방송국에도 압력을 가했다는 뜻 아니냐는 것이다. 언론·시민사회단체 등을 중심으로 권력기관의 언론 장악을 차단하기 위한 방송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11개 언론단체들은 5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언론통제 철저히 규명하고 언론독립 위한 방송법 즉각 개정하라”고 촉구하며 ▲청와대의 언론장악 청문회 즉각 실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방송법 즉각 개정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 연정, 철저한 조사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정현 사퇴

    11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청문회를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방송법 개정이다. 보도국장 임명권 문제 등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이정현 녹취록 파문’은 언제든 다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김주언 KBS 전 이사는 “국회 차원의 언론통제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죄, 재발방지 대책 약속이 있어야 하지만, 약속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며 “언론이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도 개선만이 과거의 지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라며 “김시곤 전 국장도 보도 제작의 독립성과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녹취록을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능희 언론노조 MBC본부장 또한 “이번 이정현 녹취록 파문은 곪고 썩은 것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것이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이런 사태 벌어지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 본부장은 “이 녹취록은 공영방송의 실상이고 정권에 아부하고 충성해야만 출세하고 또 모든 비리를 정권에서 내려온 사람이 막아주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그러면서 언론은 이 나라 곳곳에서 들리는 신음소리를 전혀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모두 언론이 제대로 서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언론장악의 폐해”라고 질타했다.

    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언론 장악 사례는 KBS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낙하산 사장 임명을 반대하다가 대량해직 사태를 경험한 바 있는 YTN 역시 청와대의 지시로 보도를 통제 당한 사례가 있다.

    박진수 언론노조 YTN지부 지부장에 따르면, YTN은 2008년 3월 검찰 떡값 수수 의혹 관련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돌방영상이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홍상표 당시 보도국장이 첫 방송이 나간 후 제작자를 불러서 방송 중지 요청을 했다. 청와대 대변인실 항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제작자가 수정을 거부하고 해당 방송이 방송되지 못했고 인터넷에서도 내려졌다. 홍 당시 보도국장은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이 됐다.

    박 지부장은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 사안은 어제 오늘의 사안도 아니고 박근혜 정부만의 사안도 아니다”라며 “핵심은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을 어떻게 선임하는 구조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최소한의 견제기능이 없다면 보도국장은 사장의 나팔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언론장악으로 인해 국민의 알권리가 얼마나 박탈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현 녹취록 파문으로 정치권 안팎이 시끄럽지만 정작 KBS는 이에 대해 단 한 건의 보도도 내보내지 않았다. 이 외에도 정부가 민감해 하는 사안인 서별관 회의나 현대원 미래전략수석의 제자 인건비 착복 논란도 보도하지 않았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지금 KBS 뉴스를 보면 정부여당과 청와대 관련된 이슈를 파악할 수가 없다. 대표적인 예로 대정부 질문을 통해 많은 지적이 있었던 어마어마한 분식회계가 이뤄졌음에도 공적 자금을 지원을 결정한 서별관 회의 문제, 세월호 특조위 강제종료 등 메인뉴스 시청률 20%가 넘는데도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있다면 정부의 해명 기사만 있을 뿐 문제를 제기하는 뉴스를 찾아 볼 수 없다”며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기레기’ 소리를 들었던 우리 언론, KBS 모습은 그 때 그대로”라고 말했다.

    성 본부장 또한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한 보도국장 직선제 등의 제도 도입,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성 본부장은 “김시곤 전 국장은 왜 (이정현 전 수석의) 전화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렇게 했다간 쫓겨나기 때문”이라며 “권력의 외압에 맞서지 못하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보도국장이 임명권자와 맞서서 KBS 편성의 자유를 지켜낼 수 있는 무기가 단 하나도 방송법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녹취록 문제는 방송법 개정을 통해서 공영방송의 방송 책임자, 제작자들이 방송의 독립, 언론 자유, 방송자유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가령 보도국장 직선제 등이 있었다면 조금 더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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