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핵화-평화협정 병행해야
    '좋은 핵과 나쁜 핵' 구분은 잘못
    [인터뷰] 고영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②
        2016년 07월 04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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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대 평통사 대표와의 인터뷰를 1부 사드와 한미동맹, 2부 평화협정과 국방개혁으로 나눠 게재한다. 이번 회는 2부 인터뷰이다. 내용에 대한 이견과 반론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인터뷰는 6월 17일 진행했으며 녹취와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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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대 인터뷰 1부 링크

    정종권=(1부 시진핑 주석 발언 등은 통해) 한미일 동맹 대 북중러 동맹이라는 식의, 군사동맹 간 대결이 아닌 공동안보, 협력안보로, 곧 안보협력체로 안보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이 있다는 것인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주한미군과 관련한 질문을 하겠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북한이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통해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을 동의한다,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는데 어떻게 봐야 하나?

    고영대-우선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와서 그 얘기가 나오고, 정상회담에 수행했던 임동원 전 장관 등이 이런 얘기를 재생산하고, 문명자 LA 타임즈 기자와의 개별 인터뷰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한마디가 절대화돼서 남쪽의 진보진영 특히 NL진영에서 거기에 맞춰서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느라고 2000~2001년에 논란이 많았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얘기가 또 나오고 있다.

    그런데 2001년 8월 김정일․푸틴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조러 공동성명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기는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한 말이 우선이겠나, 아니면 국가 간 두 정상이 만나 채택한 공동성명이 더 우선이겠나, 저는 당연히 후자라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7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한 보고에도 주한미군과 장비 등을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북한 사회에서는 당대회 보고가 가장 큰 규정력을 갖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이나 임동원 전 장관 등의 이야기는 북한의 공식 입장과는 맞지 않는다.

    지위변경 통한 주한미군의 통일 후 주둔 주장에 대해

    정=당시에 남한의 학자나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를테면 주한미군이 소위 평화유지군으로서 지위변경을 하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 등의 얘기가 나왔는데

    고=그렇다. 이런 주장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대북 적대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과 이행, 한반도 통일 실현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긍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저는 한마디로 비현실적이고 타당성이 없는 넌센스 같은 얘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유엔 평화유지군(PKO)의 활동에는 3원칙이 있는데 분쟁 지역에 PKO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정전이 이루어지고,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무력 불사용의 원칙으로서 어느 한 쪽과 교전을 해선 안 된다. 이러한 3원칙에 의거하여 운용되며, 유엔 사무총장의 지휘를 받는다. 따라서 주한미군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역할을 변경한다는 것은 그동안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데 그걸 감수하겠나. 권한은 없고 의무만 주어지는 건데 미군이 그걸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 더욱이 주한미군은 미군으로든, 유엔군으로든, 북한과 교전 당사자였지 않나. 교전 당사자가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건 모순이다. 때문에 미군이나 유엔군은 평화유지군으로서의 위상을 가질 수 없다. 성립이 안 되는 얘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거다.

    한 가지 더,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을 통한 계속 주둔 주장이 나온 배경과 문제점을 정확히 봐야 한다. 이런 논리가 한국 사회의 군사전문가나 진보진영에서 나오기 시작한 배경은 2000년 들어서서 남북, 북미 관계가 풀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는 상항에서 나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전협정 60항에는 정전협정 체결 후 3개월 내에 한 단계 높은 정치회담을 열어서 외국군 철수 문제를 포함한 한국의 평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규정 때문에 평화협정 논의가 진행되는 순간, 주한미군 철수는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국책 연구기관 논문들도 평화협정 체결 시 외국군(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의제로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과 한국 정부는 평화협정 체결 후는 물론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한국 계속 주둔을 상정하는 거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그런 조건 하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보수수구진영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드는 차원에서 주한미군 지위 변경 주장이 나왔다는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마디로 주한미군 계속 주둔을 위한 한미동맹세력의 대안 논리다. 그런 줄 모르고 똑같은 주장을 따라 하다 보면 진보의 대안을 만들어 낼 수가 없고 장래도 없다. 주한미군이 어떤 위상과 역할을 하게 되든 간에 평화협정 체결 후에도 계속 한반도에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진보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정=소비에트 붕괴 후의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힘이 일방적 우위에 있다는 것을 반영하면서 현재의 주한미군 주둔과 동북아의 패권적 지위를 굳히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논리로 봐야 한다는 것인가

    고-그렇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주둔을 영구불변의 대전제로 삼고 그 근거를 마련해 주기 위한 거다. 참여정부 때 국정원을 모기관으로 하는 국제문제조사연구소(현재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있었던 조성렬 씨가 세계 각지의 PKO 사례 등 미군 등 외국군 주둔 사례를 들면서 그런 주장을 했고 참여연대 등이 조성렬 씨를 주 발제로 하는 토론회를 개최하곤 했다. 한마디로 멍석 깔아주었던 것이다. 이철기 교수처럼 진보적 입장에 있는 분들도 그런 주장을 했는데, 이 교수는 나중에 그 입장을 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성렬 씨는 PKO 외에도 나토 코소보 군, 러시아군과 독립국가연합(CIS)군이 몰도바에 주둔하는 사례와 같은 외국군 주둔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위한 근거와 명분으로 삼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에 대한 김종대의 주장은 바로 한미동맹 세력들이 한국과 한국민들을 영구히 한미동맹의 틀에 가둬 두기 위한 의도에서 하고 있는 주장들과 별 차이가 없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먼저 명확히 과학적 근거를 들어 밝혀야 한다. 한미동맹세력이나 보수수구세력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차용해서 무슨 새로운 진보적 대안이나 되는 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방위조약

    1953년 8월 8일 이승만과 덜레스의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 후 모습

    한미방위조약과 자동개입 논란에 대해

    정=한미동맹에 대해 한가지 만 더 짚고 넘어가자. 김종대 의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엔 유사시 (미군) 자동개입 조항도 없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오로지 믿음으로 유지되는 ‘희한한 동맹’이라고 얘기하는데.

    고-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더라.(링크) 그의 주장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 조항이 반영되도록 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자동으로 개입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되는데. 이건 우선 팩트부터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 거다. 미국이 맺고 있는 어떤 방위조약, 곧 나토와 같은 조약에서도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조항은 없다. 국방연구원도 이미 오래 전(1990년)에 미국이 맺고 있는 어떤 방위조약에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규정하는 조항이 없다는 글을 내놓은 적이 있다. 미국은 동맹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자국의 개입 여부를 어디까지나 미국의 헌법이나 전쟁법 등 법률에 따라 결정한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자동개입하도록 요구하는 한국의 보수수구세력들의 주장에 넌더리를 쳐왔다. 한국의 보수수구세력들도 이제 자동개입 조항 요구와 같은, 조약적 근거도 없고 시대적 조류와도 맞지 않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즉 보수수구세력들은 그 동안 주한미군을 한강 이북에 주둔하도록 해서 이를 이른바 인계철선으로 삼아야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자동개입하게 된다는 주장을 해왔는데,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자동개입 조항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미 미2사단이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돼 있는 상황에서 자동개입 조항과 인계철선 주장이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꽉막힌 수구가 아닌 다음에야 이제는 인계철선 주장을 하지 않는다. 뉴라이트 계열이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정의당에서 나온다는 건 정의당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얘기다. 한미동맹에 대한 절대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건데, 군사동맹 속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기회가 닿는다면 정의당 지도부에게도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생각이다.

    고2

    고영대 평통사 대표

    부시 정부 2기 때 평화조약 논의 나온 배경

    정=중국도 최근 들어서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실현하자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북핵 문제와 연관지어 평화협정 체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국이 대북 대결 정책만 고집하다가 자칫 미국, 중국 등 주변국에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것은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에 대한 타결책에서 나오는 성격이 강한 듯하다. 평화협정 얘기가 나오는 정세적 맥락과 그 실현 가능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실천적 고민은 어디로 모아져야 한다고 보나.

    고-우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협상하던 과정, 즉 2003년~2008년 당시 정세를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부시 정권 2기(2005~2008)에 들어서 미국은 젤리코 보고서에 의거해 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부시 정권은 1기 때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총력을 기울였다가 뜻대로 안 되니까 방향을 바꿔서 평화조약을 체결해서 한반도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는데 이걸 노무현 정권에서 적극적으로 받지 못하고 대안으로 종전선언을 제시했다.

    정=왜?

    고-부담스러우니까.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정전협정 60항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함께 다룰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정권이 태동하기 어려운 거고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시한 게 ‘종전선언’이었다. 10.4 선언도 3자 또는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종전선언은 그냥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일 뿐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가져올 국제법적 규정력도 없고 그에 대한 비전이나 구상, 계획을 담을 수도 없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의미 있는 강제적 조치가 아니다. 정치적 선언의 의미는 있으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정=부시정권 2기에서 평화조약 체결까지 수면 위에 올렸지만 노무현 정부가 못 받았다(?). 당시 허약한 지지 기반과 상황 속에선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데 노무현 정권이 이를 반대할 것은 아니지 않나. 노무현 정권의 수용 능력 문제인 건지, 부시 정권의 평화조약 안에 북이 수용하기 어려웠던 한계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정치적 수사로 그친 것인지, 당시의 평화협정을 둘러싼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고-단순한 레토릭은 아니었던 것 같다. 2007년 5월 당시 버시바우 주한미대사가 경향신문 등과 인터뷰를 하면서 2008년 중에, 다시 말하면 부시대통령의 임기 중에 평화체제 수립 협상, 비핵화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등에 대한 협상들이 함께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물론 한미동맹 해체와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버시바우나, 젤리코, 라이스 장관 모두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동서독 통일과 냉전해체 과정에 관여했던 인물들이다. 미국은 그들의 경험을 한반도에도 적용해보려고 한 것 같다. . 왜 못 받았는지는 노무현 정부의 한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다른 이유가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 관련 정책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뒷이야기가 있다면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동안 토론회나 논문 등에서도 관련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이 부시 정권의 평화조약을 못 받았다는 것은 내 주장으로 무슨 정보가 있어 하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드러난 내용과 보도된 내용을 보고 내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다.

    정=미국이 결심을 하고 북한이 반대하지 않는데 왜 안 된 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고-젤리코 보고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젤리코 보고서 작성 당시에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조성렬 씨를 그 팀에 보내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 때 나온 페리 보고서도 한국 입장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다. 미국의 일방적인 보고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에야 가서야 평양에 갔다. 10.4 선언도 집권 막바지에 가서 하게 되니까 그걸 이행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오고 꼬박 2년이 지난 후에야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이다. 2003년 집권하자마자 김대중 정권 때 햇볕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을 사법 처리하고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자마자 BDA 문제가 터져 북미,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도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할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권의 한계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6자회담은 계속되고 2008년 6월에는 북한이 영변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비핵화 의지를 과시했지만 이미 6자회담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의 평화협정 비공개 제안과 북의 거부 이유는?

    정=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가 물밑에서 진행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역 제안을 북한이 거절했다는데?

    고-오바마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이른바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북핵 폐기나 한반도 비핵화에 실패했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 유엔을 매개고리로 삼아 미 국무부와 북한 유엔 대표부 사이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선 평화협정 주장과 오바마 정권의 선 비핵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접점을 못 찾은 걸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원했다면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해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북한이 수용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반도 비백화가 논의된다는 전제 하에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한 거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거부했다. 선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고수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또 다른 전제나 담보 조건을 요구했는지, 아니면 북한이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다른 담보를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협상이 깨지고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4차 핵실험)으로 맞선 거다.

    정=2007년엔 노무현 정부가 못 받은 거고 최근에는 북한이 거부한 그런 국면이 되는 건가.

    고-동북아 정세흐름을 다시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 시작된 배경엔 핵 문제를 빌미로 북을 고립, 압박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작용했다. 그래서 북한도 처음엔 6자회담 참여를 주저했다. 그런데 6자회담에서 거꾸로 미국이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50년 넘게 유지돼온 동북아 냉전체제가 해체의 길로 가는, 현상 변경의 길로 접어드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젤리코 보고서도 그런 동북아 현상 변경 가능성을 일정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6자회담이 깨지면서 현상 고착으로 다시 후퇴해버린 거다. 그래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자회담이 개시되어 중단되기까지 5년을 동북아 냉전 해체 과정 또는 현상 변경의 과정으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고, 지금은 다시 그 길을 모색하기 위한 북미 간 샅바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3년~2008년까지 5년의 정세와 지금 정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하다가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한 듯한 입장의 오바마 정권과 그 사이에 핵전력을 훨씬 강화해버린, 그래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적인 전략노선으로까지 선언한 북한 간에 협상 재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선 평화협정이나 미국의 선 비핵화 입장은 중국 왕이 외교부장의 주장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클래퍼 미 정보국장이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는 보도도 미국이 적어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와 협상을 해볼 생각은 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거다. 이에 박근혜 정권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인데, 한미동맹이라는 굴레 속에 매어 있는 한 다소 진보적인 노무현 정권이나 한층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박근혜 정권이나 운신의 폭이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북이 영구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지향한다면 비판해야

    정=앞에서부터 계속 한미동맹, 한미일 동맹 등 이런 것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에 대해 얘기했다. 또 하나의 측면이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과 핵능력 강화의 문제가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는 별개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고-미국 핵은 나쁘고 북한 핵은 좋다고 접근하는 이상 한반도 평화와 평화협정, 통일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1950~60년대 일본 진보진영 내에서의 하얀 핵, 검은 핵 논쟁처럼 누가 핵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좋은 핵일 수도 있고, 나쁜 핵일 수도 있다는 접근은 진보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일본에서 당시 중국의 핵실험을 둘러싸고 대표적인 반핵평화단체였던 원수협이 분열하여 원수협과 원수금으로 나뉘었다.-편집자) 핵은 가장 반인륜적, 반인도적인 무기로 인류와 공존할 수 없으며, 반드시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여기에 그 어떤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의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핵무기를 아예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국제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핵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전 세계 핵군축이 이뤄지는 것과 연동해서만 북핵이 폐기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단호히 반대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한반도 평화와 평화협정,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 거다. 전 세계 핵 폐기에 앞서 북한 핵 폐기, 한반도 비핵화도 가능한 것이다. 이는 전 세계 비핵지대화에 앞서 특정 지역의 비핵지대화를 먼저 실현해 가는 것과도 상통한다. 북한 핵 보유는 평화협정 체결과 통일에 복무하는 하위 개념으로 봐야지 이것을 넘어서서 핵보유 그 자체가 목적이서는 안 된다. 남북한과 관련 당사국들은 함께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통일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고 계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이 핵을 폐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만약 그러지 않고 다른 핵보유국처럼 이러저러한 명분을 들어 핵을 영구 보유하는 입장으로 나간다면 미러와 같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핵강대국들이나 이스라엘 등 명분 없는 핵보유국들처럼 단호히 비판받아야 된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1964년 중국이 핵실험을 하고 나서 내걸었던 명분과, 북한이 핵을 갖고 나서 내세운 명분이 대동소이하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가 북한이 중국처럼 핵을 장기 보유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스스로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것이거나, 그런 길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고 나서 북한은 대북 적대 정책 때문에 불가피하게 핵을 갖게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런 입장이 지켜져야 한다. 불가피하게 핵을 갖게 되었다면 그 불가피성이 제거된다면 핵이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불가피성을 넘어서서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영구 보유하겠다는 입장을 굳힌다면 남쪽의 진보진영은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도 남한의 진보진영은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하는데, 그 균형 감각이란 북한이 핵을 개발, 보유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폐기하도록 함께 노력을 기울이는 속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 노력도 기울이는 것이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된 원인을 해결하고 정세에도 부합한 합리적인 입장이라고 본다.

    국방개혁이 매번 실패한 이유는

    정=국방개혁이나 군개혁이라고 하면, 주로 군 인권 문제들과 양심적 병역 거부 그런 것들이 연상된다. 그보다는 우선 병력 규모 이야기부터 해보자.

    고=국방개혁의 핵심은 문민통제와 병력과 예산 감축, 군 지휘구조의 슬림화 등이라고 본다. 병력 규모 얘기부터 하자면, 한미동맹을 전제로 하면 국방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역대 정권마다 국방개혁안을 수립해 왔으나 실패한 주된 원인은 미국에 있다. 육군 병력 감축이 계속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때도 1군과 3군을 통합해서 지상작전사령부(지작부)를 창설하는 방안-군 지휘구조 개편-을 미국이 반대했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안-육군 규모를 38만 명으로, 육해공군까지 포함해서 50만 명으로 감축하는 안을 파탄낸 것도 미국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육군을 많이 줄이게 되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은 피해가 많은 지상군을 많이 투입해야 하고, 미국은 해공군 위주로, 한국은 육군 중심으로 작전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육군 병력이 줄어들면 장성들의 별자리와 중령 이상 고급 장교들의 자리가 줄어드니까 군내 기득권을 지키려는 육군 기득권 세력과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국방개혁이 계속 실패해 왔다. 거기엔 결국 한미동맹이라고 하는 족쇄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김종대처럼 한미동맹을 전제로 해놓고 국방개혁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 군 병력 감축과 관련해서도 김종대는 정의당이 한국군 병력을 40만 명으로 감축하자는 전향적인 주장을 하니까 국방부가 긴장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넌센스다. 000 전 공군 중령의 말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 때 국방개혁팀에서 한국군 적정 병력 규모를 연구한 결과가 35만 명이라고 하더라. 어찌됐든 김영삼 정권조차도 35만 명을 얘기하는데 40만 명을 얘기하는 것은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내놓을 대안은 아니다. 만약 통일 전에 남한군이 40만 명이나 된다면 남북이 통일되면 그 수가 얼마나 늘어나겠나. 북한군을 모두 전역시킬 것이 아니라면….

    통일 한국의 병력을 40만 명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숫자다. 중국을 가상적으로 상정하는 일본도 병력이 20만 안팎이고 대만도 20만 안팎이다. 한국이 통일돼서 40만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40만 감축안을 가지고 이것이 마치 진보적인 국방개혁안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다. 진보적 입장에서 국방개혁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약 30만 명 이하를 주장한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핵심은?

    정=국방개혁과 관련해서 통합군과 합동군 등의 군제, 군령과 군정의 분리 등 이런 얘기까지 하는 사람은 진보 쪽엔 많이 없는 것 같다. 반면 일본은 군국주의 역사 때문에 군대의 전횡과 전쟁으로의 폭주와 패전을 경험하면서 군의 권력화를 분석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고-일본은 평화헌법이 있고 문민통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된, 미국보다도 잘된 사례다. 반면 한국은 문민통제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문민통제의 핵심은 한국에서는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할 수 있느냐가 핵심 요체이다. 그 다음에 국방부 내에서 민간인 공무원들이 현역에 대해 우위에 서서 국방정책을 수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현재는 육군이 사실상 국방부의 우위에 있는 한편 국방부 내에서 공무원들은 현역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쉰다. 일본은 현역을 제복조라고 하는데, 제복조는 집행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정책 입안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최근 일본 방위성의 문민우위 규정이 폐지되고 운용기획국 문관들이 주도해온 일본 자위대의 작전계획 기안 업무를 통합막료감부의 제복조들이 독점하게 된 정도가 일본의 문민통제의 후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 사회에서는 그 정도를 가지고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현상이다.

    참여정부의 국방개혁안(국방개혁 2020)에서 문민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내 민간인 비율을 70% 이상으로 해 공무원이 우위에 설 수 있도록 했는데, 실행 과정에서 군 기득권 세력들이 전역한 군인으로 공무원 T/O를 채우니까 국방부가 제시하는 문민화 수치와 달리 여전히 현역과 군 출신이 우위를 차지하고 공무원들이 힘을 못 쓴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민간인을 국방차관으로 민간인을 임명해 온 적이 있는데, 국방차관은 서열에서도 현역 대장들에게 밀리고 장관과 현역 장성들 속에서 왕따가 되어 힘을 못 쓴다.

    국방개혁

    2011년 3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서 국방개혁과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안(국방개혁 2030) 중 문민통제와 관련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가 군제를 통합군제로 할거냐, 합동군제로 할 거냐였다. 소위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합동군제를 선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문민통제를 위해 군 서열 1위(한국에서는 합참의장)에게 군령권, 군정권을 몰아주지 않는 것이다. 군령권과 군정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군 내외 영향력이 막강해져서 정부(국방장관)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오히려 국방장관의 우위에 서서 정부를 통제하려고 든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국방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합참의장이 군정권과 군령권을 동시에 갖는 통합군제로 가게 되면 대통령도 합참의장을 제어할 수 없게 되어 군부독재 시절처럼 군이 사회와 국가 전반에 지금보다도 훨씬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그래서 통합군제와 문민통제는 양립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김종대는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에 군정, 군령을 일원화해서 한 사람이 수행해야 한다며 통합군제에 찬성하는 이야기를 해서 우리가 항의를 한 바 있다.

    정=군 인권 문제, 방위산업 비리 문제는 대중화될 수 있는 이슈인데, 군제 문제는 대중화되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일본은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까 그런 문제가 대중들의 관심과 감시의 시야에 있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의제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는 거 같다. 군내 지휘관 내부의 의제일 뿐이지 너무 이런 문제에 대해선 진보진영뿐 아니라 국민들 시야에서 빠져있는 것 같다. 군대 규모와 운영과 관련한 논의를 이어가 보자.

    고-통일 후 군사력과 관련해 통일 이후 전체 병력이 적어도 일본이나 대만 이상이 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통일 후에 남북 전체가 보유할 병력 규모가 2~30만 정도가 되더라도 안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정=일본은 모병제 시스템이고 대만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 중이다. 우리나라의 징병제도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 건가.

    고-우리도 모병제로 갈 수밖에 없다. 통일 전이라도 모병제로 전환할 수 있고 해야 한다. 군 논리로 보더라도 현대화된 군은 무기체계가 고도화될 수밖에 없으니 고도화된 무기체계를 숙련되게 다루려면 복무 기간이 짧은 일반 사병이 아니라 하사관 이상의 장기 복무자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숙련도를 익혀야 하는데, 그렇게 가려면 단순히 군 병력을 늘리는 것으론 안 된다. 오히려 모병제로 정예 병력을 선발하고 그 부분 중심으로 군을 운영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국방부와 군이 표방하는 이른바 현대군이고, 좀 거슬리는 표현이지만, 행정 위주의 군이 아닌, 싸울 수 있는, 곧 전투를 할 수 있는 군이 되는 거다. 60만이나 되는 젊은이들을 병영 속에 가두어 놓고 매일 잡일이나 시키고 하사관은 사병 관리하는 데나 시간 다 보낸다면 이래 가지고 국방부가 말하는 강군, 정예군이 되겠나. 또한 국방예산 상으로 보더라도 모병제가 유리하다.

    군 복무 기간도 유럽 수준으로 1년 안팎으로 획기적으로 단축해야 하고, 단축할 수 있다. 그 다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도입해서 모병제를 도입하기 전이라도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안보의 개념에 이런 인권적 요소들이 포함되어야 시대 변화와 현대 사회에 맞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정=그런 주장을 하면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이런 비판과 비난이 제기될 거 같은데.

    고-억지로 데려다 놓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다. 전방 GOP 같은 데서 아군을 살상하는 이런 일이 왜 벌어지나. 그게 더 큰 문제 아닌가. 정작 북한군이 노크 귀순을 해도 모르고. 모병제 등 제대로 된 국방개혁을 하고 군 인권이 보장되면 오히려 이런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

    정=전시작전통제권과 국방예산 문제도 좀 더 짚어보자.

    고=김대중 정권 때 천용택 초대 국방장관이 국방예산을 무조건 10% 줄이는 방안을 올리라고 요구했는데 군은 미적미적 넘어가고 말았다. 국방예산은 현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줄일 수가 있는 건데, 이게 안 지켜지는 이유 중 하나가 병력 숫자도 문제지만 중령 이상 고급 장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이들은 현역으로 있으면서는 인사문제나 무기도입 사안 등에서 비리를 저지르고 전역해서는 소위 무기상, 군피아가 되어 후배 현역들과 줄을 대 각종의 비리를 저지른다. 또한 이들에게는 직급, 연금 등을 포함해서 온갖 혜택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로 빠지는 예산 규모가 적지 않다. 중령 이상 고급 장교들, 장성까지 포함한 1만 여명의 기득권이 전 세계 어떤 군대보다 강한 기득권을 누려온 곳이 한국이다. 이들의 기득권을 대폭 줄여야 한다. 현재 현역 군인들은, 예를 들어 국방부에서는 대령이 과장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이사관 대우를 받는다. 타 부처에서는 과장은 서기관이, 국장은 이사관이 맡는다. 군인들의 직급이 일반 공무원보다 2계단이나 높은 것이다. 그러니까 공무원이 현역에게 말발이 먹히겠나. 또한 4성 장군은 다 장관급으로, 민간인을 국방차관에 임명해 보내 보아야 힘을 쓰지 못한다. 고급장교들의 기득권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군 병력 감축과 함께 비대한 고급 장교들을 줄여야 한다.

    군인연금만 하더라도 공무원 연금보다 훨씬 특혜가 크다. 연금이 계속 사회적,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군인연금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우리가 한 정의당 의원에게 군인연금 문제를 다루자고 제안했는데,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서 포기한 적이 있다. 그 후 한겨레신문에 특집으로 군인연금 문제를 기고했는데 사회적인 반응이 너무 없다. 군인연금 문제는 오히려 중앙일보 같은 데서 더 많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이것도 고급장교들의 기득권에 속하는 문제다. 고급장교들의 기득권들을 축소하는 것이 국방개혁의 앞 순위에 두어져야 한다.

    작전통제권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부당한 국방예산상의 요구, 방위분담금 증액 요구, 불필요한 무기체계 도입 등이 가능한 것은 한미동맹을 명분으로 삼고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짜주는 작전계획으로 작전해야 하니까 그에 필요한 미국 무기를 도입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도입해야 한다. 한미동맹 하에서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가 있는 한 군 예산을 제대로 줄일 수가 없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구상하는 전략과 작전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려면 그들이 제시하는 대로 병력 규모, 무기체계, 지휘구조 등을 갖춰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작전통제권을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물론 작전통제권은 국가 주권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도 반드시 즉각 환수되어야 하지만 국방개혁, 군개혁을 위해서도 작전통제권 환수는 전제로 된다.

    1967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나토 탈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주둔 미군도 다 쫓아냈다. 파리에 있던 나토 본부도 브뤼셀로 옮겼다.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가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작전통제권은 한 나라의 주권에 관한 문제다. 국제사회에서 주권 국가로서의 위상을 누리려면 작전통제권은 조건 없이 한시라도 빨리 찾아와야 한다.

    정=작전통제권 문제는 국가 주권의 문제가 기본이지만 국방예산, 병력 감축 등 적절하고 합리적인 국방개혁을 위해서라도 환수되어야 하고, 거꾸로 예산 삭감과 병력 감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도 하다는 것인가?

    고-예산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방부와 군은 주한미군이 없으면, 곧 주한미군의 전력이 빠져 나가면 남한 방어에 큰 전력 공백이 생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우리가 그 동안 미국에 지원해 왔던 예산, 곧 방위분담금과 같은 직접 지원비와 부지나 시설 제공 같은 간접 지원비까지 합하면 주한미군의 전력자산 평가액을 상회하고도 남는다. 주한미군이 보유한 장비 가치는 약 10조 1936억 원(2011년 기준)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1991년~2011년까지의 방위비분담금을 합하면 10조 4184억 원. 이것만 가지고도 주한미군 전력 자산 추정액을 상회한다. 2010년에만 미군에게 준 직․간접지원액(국방부 집계)은 1조 6749억 원이다. 미군기지 이전 비용, 미군탄약 저장관리 비용, 미국산 무기도입 비용 같은 것은 다 빠져 있다. 이런 것을 다 합하면 한해 3조 원 정도가 주한 미군 지원비다. 이 주한미군 지원비를 미군에 안주고 한국군이 전력 강화에 썼다고 하면 적어도 한국군 전력 자산이 주한미군 전력 자산을 더한 것 이상으로 증강될 수 있었지 않았겠나. 주한미군이 있어야만 우리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하는 논리의 허구가 이런 지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예나 지금이나 필요한 예산을 동맹국들의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 때는 그렇게 하고 안 될 때는 다른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나토 창설 초기에 독일을 재무장시켜 나토에 가입시킴으로써 나토를 강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책임 문제도 있고 국가 간에 갈등도 있어서 프랑스 등이 반대했다. 그러자 미국은 프랑스 등 나토 회원국들에게 방위비분담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원국들이 모두 재정적으로 어려우니까 분담금에 반대했다. 이에 미국은 독일을 나토에 가입시키자고 주장했고 결국 프랑스도 동의하게 되어 독일이 1955년에 나토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독일의 재무장과 나토 가입을 반대했던 게 독일 공산당이다. 그래서 해체된 거다. 그러나 거기에 타협한 사민당은 살아남았다. 군사동맹 강화와 진보진영 강화가 양립할 수 없는 한 사례다. 일본도 50~70년대의 안보투쟁 결과가 결국 일본 진보진영의 흥망을 가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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