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과 아빠의 해적선
    [그림책 이야기]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 (다비드 칼리 / 현북스)
        2016년 07월 01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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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

    주인공 소년의 아빠는 일 년에 한번만 집에 옵니다. 항상 여름에 와서 2주 정도 머물다가 떠납니다. 아빠한테서는 늘 바다 냄새가 납니다. 아빠는 해적이니까요.

    집에 오면 아빠는 소년을 무릎 위에 앉히고 낡은 지도를 펼칩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떤 배를 공격하고 보물을 빼앗았는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한 번도 보물을 집에 가져온 적이 없습니다. 자신과 타투아토만 아는 곳에 보물을 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해적선

    “무슨 희망이요?” 제가 물을 때마다,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집에 돌아간다는 희망이지.
    -본문 중에서

    아빠는 ‘희망’이라고 부르는 아빠의 배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해적선의 이름이 ‘희망’입니다. 그 무섭고도 위대한 해적들의 가장 간절한 희망이 겨우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니요! 해적들은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의 배를 약탈하고 보물을 훔쳐서 결국 자신을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그 위대한 해적들의 꿈이었습니다. 해적들 역시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해적

    아홉 살이 되던 해 여름, 아빠는 집에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에 전보가 옵니다. 전보를 읽고 엄마는 소년에게 아빠를 보러 가자고 합니다. 소녀는 드디어 배를 타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소년을 데리고 기차에 오릅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창밖에는 바다도 보이지 않습니다. 둘째 날 밤에도 두 사람은 기차에서 내리지 못합니다. 궁금해 하는 소년에게 엄마는 다음 날 아침이면 도착할 거라고 합니다.

    과연 다음 날 아침 소년의 눈앞에는 바다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비드 칼리가 만든, 또 하나의 『빅 피쉬』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를 기억하시나요? 주인공의 아버지는 허풍쟁이 이야기꾼입니다.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에는 진짜 마녀도 등장하고 어마어마한 거인도 등장하고 몸이 붙어있는 여인들도 등장하고 아버지가 잡았다는 거대한 물고기도 등장합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지요. 주인공은 나이가 들수록 허풍쟁이 아버지와 멀어집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암에 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면서 허풍인 줄만 알았던 아버지 이야기의 진실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례식 장면은 잊을 수가 없는 명장면이지요.

    제가 영화 『빅 피쉬』를 언급하는 까닭은 오늘 소개하는 그림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과 영화 『빅 피쉬』가 이야기의 형식면에서 닮았기 때문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와 실제 아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아빠의 진실을 추적하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그림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에는 비슷한 형식이지만 오히려 영화 『빅 피쉬』를 넘어서는 감동이 있습니다. 아마도 현재 그림책 분야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 다비드 칼리가 자신이 쌓은 모든 내공을 이 책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비드 칼리가 생소한 분들이 있다면 『나는 기다립니다』를 추천합니다.

    콰렐로의 그림책은 그래픽 노블과 영화 사이에 있다

    그림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을 걸작으로 완성한 또 한 사람의 장인이자 진정한 주인공은 그림 작가 마우리치오 A. C. 콰렐로입니다.

    콰렐로는 그림책에서 텍스트를 드라마틱하게 사용할 줄 아는, 탁월한 그림 작가입니다. 그림책을 많이 보지 않은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텍스트를 드라마틱하게 사용하는 것은 만화에서 ‘쿵’, ‘쾅’ 등의 의성어를 손 글씨로 강조해서 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콰렐로가 사용한 방법은 좀 다릅니다. 콰렐로는 자신의 그림에 손 글씨를 넣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텍스트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폰트를 사용했고, 중요한 문장은 색깔을 바꿨으며, 아주 극적인 텍스트는 커다란 폰트를 사용했습니다. 더불어 이야기 흐름에 따라 텍스트의 배치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탁월한 예술가 콰렐로는 그림의 배치나 구도 그리고 장면의 크기도 극적인 흐름에 따라 대담하고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림책 『우리 아빠는 위대한 해적』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즐거운 착각을 만끽하게 합니다. 콰렐로는 글과 그림을 자유자재로 다루어서 자신의 그림책을 그래픽 노블과 영화 사이 어딘가에 새롭게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아빠의 직업은 비밀입니다

    아빠의 직업은 비밀입니다. 책으로 확인하십시오. 저는 당신에게서 결코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약속 드릴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이 울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 못된 해적들의 이야기로부터 당신은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해적들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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