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기능조정’,
    에너지 민영화 그리고 전기요금
    [에정칼럼] 요금 인상론 의존 민영화 비판은 한계
        2016년 07월 01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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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발전노조가 38일간의 파업을 벌였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구조개편은 전력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기요금 인하 등 대국민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그러나 비판자들이 보기에는 구조개편은 자본들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한 전력산업의 민영화로 가는 길이었다.

    발전노조 등은 전력산업의 공공성을 내세우며 격렬히 저항했으며, 그 영향으로 정부 계획은 발전부문의 분할, 발전자회사 설립과 경쟁체제의 도입, 그리고 민간 발전사업자의 발전시장 진입 수준에서 멈춰 섰다.

    한동안 멈춰 서 있던 전력산업의 민영화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지난 14일 정부는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기능조정 방안」을 확정․발표하였다. 에너지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는 한전의 전력 판매부문을 민간에 개방하여 단계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며, 발전5사 및 한수원의 주식 지분의 20-30%를 상장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소매부문 경쟁 도입으로 원가 절감 등 효율성을 제고하고 사회적 편익을 증대”하며, “상장 공공기관의 경영 투명성, 자율 감시감독 등이 강화되고 시장자금 유입으로 자본이 확대되어 재무구조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효과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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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발전5사와 한수원의 주식 상정이 민영화가 아니고 혼합소유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등 공공기관의 주식 지분이 최소 51%를 넘기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민영화라는 미끄럼틀을 타면서 지분을 조금씩 잘라서 민간 자본에 팔아버리려는 “살라미 전술” 뿐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연말까지 로드맵을 만들겠다는 전력판매 부문의 개방과 경쟁체제의 도입 방침도 사실상 민영화 추진 계획이다. 2000년대 초반에 멈춰선 전력산업 민영화 추진 구상이 발전 부문에 멈춰 섰지만, 이번 기회에 판매 부문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가스 도입․도매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전력산업 민영화 파도가 가스산업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너지 민영화가 시도된다며 언론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다르게, 에너지 산업의 노동조합들의 반응이 의외로 조용하다. 가스노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명서조차 찾기 힘든 실정이다. 2002년 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발전노조나 파업 과정을 거치면서 에너지 공공성을 위해 결성된 노동조합과 환경단체의 연대체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발전노조는 사측의 오랜 탄압으로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최근에는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저지하는 싸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탓이라는 분석을 듣게 된다.

    환경단체들도 대응이 미비하기는 마찬가지다. 활동가들이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기고를 통해서 입장을 밝혔지만, 공식 성명서는 환경운동연합에서만 나왔다. 그러나 성명서는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독점 폐지와 민간 개방, 공공기관 상장, 경쟁체제 도입’으로 요약되는 기능조정 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은 이번 ‘기능조정’ 방침은 “목표도 불분명한 규제완화”이며 “지속가능한 전력정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영화로 해석되는 에너지 공기업의 ‘기능조정’ 계획에 대한 분명한 반대였다. 특히 “소매부분의 시장경제 도입은 오히려 가격 경쟁을 강화시켜 대규모 공급자가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있다”며, 흔히 지적하는 민영화에 따른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미묘한 측면도 있다.

    “전력소매시장의 경쟁 도입은 송배전망의 개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분산형 재생에너지사업자나 효율사업을 하는 에너지서비스 사업자의 시장 참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환경운동연합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기능조정’은 무조건적으로 반대해야 할 것은 아니다. 어떤 조건―예를 들어, “환경가치를 반영한 왜곡된 가격구조 개편과 재생에너지를 위한 별도의 공급가격체계의 도입”―을 만족한다면 활용 가능한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전환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사실 환경단체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미묘함은 2002년 발전파업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노동조합이 이야기하는 ‘민영화’에 대한 비판과 ‘공공성’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환경단체들은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는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공성과 어떤 민영화인가가 관심사다. 오히려 일부 개인․집단의 경우에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체계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민영화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존재해왔다. 실제로 이번에 나온 가스 도입․도매시장에 경쟁체제 도입 방침과 ‘민영화를 통한 에너지전환’ 추진론자의 주장이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한편 많은 이들이 민영화의 폐해로 지적하는 ‘전기요금 인상’ 비판에도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정부는 판매부문을 개방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할 경우에 전기요금이 낮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노조와 일부 환경단체들은 판매시장에 진입한 자본들의 이윤추구 때문에 전기요금이 상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 등 전기 다소비 업체들에게는 전력요금 특혜가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비판은 국회에서도 들려온다. 더민주당의 김경수 의원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에서 전력판매시장이 개방되면 “(산업용 등) 우량고객만 편취하고 농업용이나 교육용 등 원가보존이 안 되는 분야에 대해선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환익 한전 사장은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 비판론에는 다른 버전도 있다. 종종 원가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낮게 유지해왔던 전기요금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의 유기준 의원은 “현재 주택용 전기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60% 수준”이라면서 “(전력판매시장 개방 후 판매사업자가) 전기요금을 현실화시켜야 한다며 전기요금을 올리게 되면 모든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환경단체들은 전기 생산에 사용된 1차 에너지보다 저렴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등의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왜곡된 전기요금의 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다.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은 현재 조건에서 전력소매시장 개방과 발전산업의 일부 민영화와 전기요금의 정상화는 무관한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같은 상황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환경운동의 일부 논자들은 물가안정 차원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정책이 가능했던 것은 공기업 체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민영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시장에 맡기면 전기요금이 올라간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고, 그래서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며, 시장에만 맡긴다고 전기요금이 (인상을 의미하는) 정상화가 되겠냐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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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낮은 전기요금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개발주의 시대부터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 낮게 유지해온 전기요금은 자원 배분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경제학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다. 게다가 기후변화의 위기 시대에 부적절하게 에너지 소비를 부추긴다는 면에서도 용납되기 힘들다. 지역 주민들에게 에너지 부정의를 유발하고 핵위험을 가중하면서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한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바로잡고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반영하여 전기요금을 반영한다는 정치적 결단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의 역할이 아니다. 정치가 부재하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시장에 대한 환상이 피워 오를 뿐이다. 에너지 민영화가 전기요금을 인상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잘못된 전력시스템의 변화 없이 자본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기 쉽다.

    에너지 민영화 비판론이 손쉽게 전기요금 인상론에 매달리면서 값싼 전기요금을 당연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런 주장은 탈핵 에너지전환 운동 앞에 장애물을 잔뜩 쌓아 올리는 꼴이 될 것이다. 또한 ‘에너지 공공성’과 ‘에너지 전환’ 담론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문제는 전기요금에 어떻게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반영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형평성 있게 배분할 것인가에 있다. 또한 그렇게 정상화된 전기요금이 누군가의 배를 불리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에너지전환의 길을 열어 가는데 도움이 쓰일 것인가에 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적절한 에너지산업의 소유․규제 구조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일이다. 노동조합 일각에서는 과거 개발주의 시대에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거대 공기업 체제로 되돌아가는 것을 ‘에너지 공공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야만 전력 발전․송전 설비를 확대시키고 공급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낮은 전기요금을 통해 기업 생산을 지원하고 소비자의 편리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에너지 공공성’ 담론은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정의 비판에 대단히 취약하다. ‘에너지 전환’ 담론과도 양립하기 어렵다. 전략적으로 볼 때 그러한 버전의 ‘에너지 공공성’ 담론이 부각될수록, 시장주의적 에너지전환 담론 쪽이 명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공적 소유와 통제라는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지역분산적이고 수요관리가 강조된 재생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에너지 공공성’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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