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문정현,
    시대의 두 어른 전시회
    비정규노동자의 집 건립 힘 보태려
        2016년 06월 28일 08: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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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술에 취해 해롱거렸지. 역사, 진보 그 예술에 취한 적은 없잖아. 그럼 술 끊어야 하지 않겠어? 역사와 진보에 취하지 못하는 놈들은 술도 먹지 말라는 소리야. 억만금은 받아야 하는 건데 조금만 받을 테니 가져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 ‘시대의 2인전 두 어른(두 어른 전)’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직접 쓴 붓글씨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라고 꼽은 ‘역사 진보 그 예술에 취할 줄 모르는 놈들아. 술잔을 놓아라’에 대한 설명이다.

    백문-역사

    백문

    백기완(왼쪽) 소장과 문정현 신부(사진=유하라)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이 시대의 두 어른이 ‘붓글씨’와 ‘새김판’ 전시를 연다. 부당한 것에 맞서기 위해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한데잠을 자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꿀잠’을 잘 수 있는 집짓기 모금을 위해서다.

    백 소장은 붓글씨 36점, 문 신부는 새김판 77점을 전시한다. 공동작업한 작품도 3점 내놓는다. 붓으로, 칼로 써내려간 글귀는 평생을 완고한 세상에 금을 내기 위해 살아온 두 어른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추진위원회(꿀잠 추진위)는 선배이자, 동료이자, 친구로 현장에서 함께했던 백 소장과 문 신부의 붓과 칼로 ‘꿀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꿀잠 추진위는 거의 두 달 가까이 두 어른을 설득했다. 처음엔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전시회 제안을 거절했으나 끈질긴 설득에 두 어른 모두 “우리를 앞장세워 노동자 문제를 얘기하겠다면 함께 하겠다”며 전시회 개최를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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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소장은 이번 전시에 내놓을 붓글씨를 위해 한 달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 만큼 공들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백기완 소장은 간담회에서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짓는데 뭘 좀 보태고자 나서긴 했는데 붓글씨 쓸 줄 모르는데 붓을 들라고 해서 멋쩍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대추리 주민들, 용산 참사를 보면 분노를 참지 못해 새김판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0년 가까이 꾸준하게 깎아온 작품을 꿀잠 추진위가 선별해 이번 전시에 내놓는다.

    문 신부는 “돈을 받고 판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지만, 집을 짓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작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꿀잠을 위해서 보태주는 마음으로 가져가셨으면 한다”며 “그저 고통 속에서 만든 노력, 작품이라고 생각하시고 많이 알려 달라”고도 했다.

    ‘천년을 실패한 도둑’ 우리 모두의 이야기

    “천년이라는 말은 영원과 같은 말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속여 한탕 치려다가 괜히 사람 같지 않은 것 같아서 때려 쳐서 실패하고, 또 노동자, 농민 피눈물을 슬쩍하려다 보니까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실패한 도둑의 이야기야. 실패했지만 도둑은 도둑이잖아. 그래서 천년을 실패한 도둑은 생각만 하고 있다가 아무 것도 못 했어. 그게 누구냐, 바로 여러분이야. 모두가 실패한 도둑이야. 우리 같은 소박한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야”

    ‘천년을 실패한 도둑’이라는 글귀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백기완 소장의 답변이다. 그의 시에도 나오는 이 글귀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천년

    꿀잠 추진위이기도 한 유흥희 기륭전자 분회장은 “법으로부터 외면당한 비정규 노동자들이 투쟁 중에 잠시라도 따뜻한 사랑방에서 쉴 수 있고 옷이라도 빨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거리에서 자는 노동자의 삶을 조금은 바꿔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꿀잠 집짓기다”라고 설명했다.

    ‘꿀잠’은 지방에서 상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접근이 쉽게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등에 마련할 예정이다. 건물 매입과 리모델링 비용으로 총 10억을 목표로 잡고 있다.

    유 분회장은 “기륭전자 투쟁 10년 동안 정말 안 해본 투쟁이 없다. 싸울 때 가장 서러웠던 게 뭔지 생각해봤다. 우리는 늘 배고프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런데 거리에 정말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거리에서 한데잠을 자는 노동자들에겐 편안한 잠자리, 따뜻한 말 한마디, 어렵고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손잡아주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랑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꿀잠 추진위는 “이 전시를 두 어른의 보살핌으로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두 친구’의 우정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주름진 얼굴의 두 친구가 바라는 건 더 많은 친구들이 벽돌 하나 쌓는 일에 나서주는 일이다. 꿀잠이 문을 여는 날, 벽돌을 함께 쌓은 모든 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 앞에 앉아 정다운 기념사진 한 장 찍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두 어른 전’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 갤러리에서 오는 7월 5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일요일 휴관).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의 작품은 모두 구입이 가능하며 전액 꿀잠 짓기에 사용된다. 온라인 관람 및 행사공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페이스북 페이지 ‘두 어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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