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재구성한
    힘든 시절 우리 아버지들의 작은 역사
    [다큐 사진] 김창희의 《아버지를 찾아서》
        2016년 06월 27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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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국가나 민족 혹은 사회에 대한 역사는 의미 있는 역사가 되고, 그렇지 않은 개인들의 작은 역사는 하찮은 것이 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은 개인의 감성에 관련된 일상생활에 대한 기록과 해석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가는 과거가 남긴 유물 외에 주로 문자로 된 글을 사료로 삼아 역사를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자료로 삼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진 이미지가 사료로 삼기에는 그것이 전달하는 의미가 너무 애매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그것을 찍는 사람이 그것을 찍는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한 채 카메라라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독자적으로는 아무 말도 직접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진에 나타난 경험을 공유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사진은 단순히 글의 내용을 증명해주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넘어 글이 담지 못하는 미묘하고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줄 수 있다. 이른바 일상의 감성을 포함하는 미시적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것이다.

    사진은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한 순간적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건의 전후 관계나 맥락을 직접 말해주지는 않는다. 사진이 밝힐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사건적 실체가 아니고 하나의 장면 안으로 함축되어 재현된 이야기이다. 단 하나의 것이 아닌 여럿 가운데 하나의 사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증과 분석의 역사가 사건에 대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사진을 가지고 하는 역사는 서사적이고 창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진으로 하는 역사 서술은 객관적 역사 서술에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문학을 결합시키는 작업이다.

    미시사는 객관성과 전체성의 근대성을 바탕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 다름과 낯섦 그리고 다양함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 따라서 대상 밖에서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고, 대상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사는 일상의 여러 단면들을 재현한 사진을 가지고 서술하는 역사야말로 의미 있는 미시사의 하나가 된다. 글로 하는 기록이라는 것이 권력자나 식자층이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당한 소위 작은 위치의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의 여러 단면을 서술하는데 사진은 적합한 매체가 된다.

    사진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기존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의미도 있겠지만, 소위 객관화되고 전체화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미시사에 의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는 분석과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실증적 의미에서의 증거보다는 증거와 증거를 잇는 최선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이 점에서 사진은 큰 규모의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보다는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 사는 구체적 삶을 이해하는데 더 적합하다. 인과에 대한 근거 제시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과 사실의 가능성을 추론하는 이야기 전달 매체로서 적합한 것이다. 난, 사진으로 하는 이러한 가능성의 역사, 이야기로서의 역사, 감성의 역사를 김창희의 《아버지를 찾아서》에서 찾았다. 이 책은 한국전쟁 시기 무렵부터 60년의 시간을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통해 그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자식의 기록이다.

    《아버지를 찾아서》의 저자 김창희는 2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지내던 저술가다. 그는 우연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상당한 분량의 필름과 문건을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길을 찾아 나섰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사진과 글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제3자의 이야기들을 자료로 삼아 아버지의 역사를 재구성했지만, 스스로는 그것이 ‘내가 만난 아버지’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 아들이 만난 아버지의 역사에는 전하고 싶은 특별한 메시지나 의미가 없으니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시사이자 일상사이다.

    롤랑 바르트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진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의 다섯 살 때 사진이라면서 그 사진은 자신에게는 가장 좋은 사진이지만, 남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바르트는 역시 사진 비평가의 입장이다.

    하지만 김창희는 자신만의 아버지 이야기일 뿐 남에게는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비록 독자들에게 남의 이야기이니 미주알고주알 기억할 필요는 없겠다 했지만) 꿋꿋이 작성하여 책으로 만들어냈다. 그것은 그의 책이 단순한 그 사진들로부터 일어나는 감성의 미학을 다루는 게 아니고,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가족을 둘러싼 역사가 더 큰 역사보다 덜 가치 있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새로운 지적 세계를 열어 준 저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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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의 의미를 읽는다. 내가 역사학자이자 사진비평가인지라, 아니나 다를까 하나는 역사학에 관련된 이야기고, 또 하나는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다.

    우선 역사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자. 지나간 과거를 하나로 재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그 과거의 모든 것을 사료라는 근거로 다 증명할 수는 없다. 증명이 아닌 상상이 들어갈 틈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 재구성이 일종의 문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서울 시민증 사진 (사진1)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가 대통령이 서울 시민들을 버리고 남으로 도망을 갔다가 서울 수복 후 그 인공 치하에 살았던 그 시민들의 빨갱이 부역 여부를 심사하는 행태에 조소 내지는 야유를 퍼붓는 아버지의 그 때 그 세계관을 읽는다. 문학적 역사 재구성의 전형으로 책의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가족에 관한 미시사다. 사진2는 저자가 첫 걸음을 뗀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순간을 이렇게 추측한다. “그 때 어머니가 ‘얘가 오늘 걸었어요!’하고 (아버지께) 알려준다. 그러면 아버지는 ‘정말이냐!’고 되물으며 ‘어디 한 번 걷게 해보시오’라고 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저자의 개인사로 보나 그 부모의 입장에서 보나 가히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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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아버지인 김필목 선생의 사진에 관한 부분이고 그 사진을 보는 아들 김창희 선생의 사진을 보는 눈에 관한 것이다. 김필목 선생의 사진은 네모가 반듯한 전형화된 사진이다. 이런 사진을 보고서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당시의 사진 미학에 매우 충실하였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잣대로 그 사진을 평가할 수는 없다. 결정적 순간이라든가, 창의적인 예술성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의 사진을 한낱 자료 사진에 불과하네 어쩌네 하는 따위의 평은 온당치 못하다. 기록적 성격을 충실하게 갖춘 사진에 대해 그 사진이 갖는 물성(物性)이 어떠한지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난 이 책의 294쪽에 나오는 사진3의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본다. 할머니의 눈으로부터 출발한 시선은 어머니의 눈을 거쳐 손주의 얼굴로 가고, 밥그릇을 온전하게 포함하면서 전체 구도를 어머니와 아이 중심으로 잡았다. 절묘하게 맞춰진 명과 암의 대비는 흑백 사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충분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저자 김창희가 읽은 할머니의 무명 치맛단 아래 낀 때에서 찔린 풍크툼과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멕에 죽일려네…”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을 거라고 한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이 사진은 기록성, 미학적 물성, 최고의 비평이 어우러진 수작이 된다.

    저자 김창희는 사진4를 아마추어 사진가인 아버지가 남긴 몇몇 수작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저자가 가진 사진 미학적 눈이 예사롭지 않다. 먼 언덕으로 부리나케 뛰어 올라가 상여 행렬의 전체 모습을 원경으로 잡았다는 것, 아주 작게 그려진 사람들의 존재와 빛이 만든 밭의 여러 그림자가 마치 붓으로 터치한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은 저자의 평가가 적확하다는 것을 뒷받침 해준다. 여기에 카메라를 든 아버지의 동작 하나 하나를 뒤따라가면서 상상으로 읽어낸 그 시간의 기억은 사진으로 재구성하는 미시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진을 통해 아버지를 만나는 저자 안에서 우리는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 고향, 어머니의 품과 아버지의 수염을 만날 수 있다. 사진과 문학이 역사를 재구성하는 새로운 세계를 이 책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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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은 사진으로 하는 기록이 문자로 하는 기록보다 더 널리 행해지는 시대다. 과거 같으면 역사 교육을 일방적으로 받아온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시각으로 역사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서술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 새로운 역사 재구성과 관련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자신들만의 역사 재구성을 한다는 사실이다. 신문, 잡지, 페이스북(facebook)을 비롯한 여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책, 텔레비전 등에 사진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개인의 감성에 관련된 일상생활에 대한 기록과 해석은 전문 역사학자가 관여할 부분이 되지도 못하겠거니와, 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 역사 기록과 해석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사진을 가지고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정 부분 역사 재구성 방법론을 익힌 사람은 ‘나’만의 역사를 가질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웬만한 자료는 다 구할 수 있고, 웬만한 고전은 쉽게 번역이 되어 있기도 하니 과거 전문가들만이 자료를 구하고 활용하는 독점 체제는 이제 거의 다 파기되었다.

    실력만 쌓으면 전문가 못지않게 좋은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분야가 가족사라고 본다. 널리 알려지다시피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 분단과 한국전쟁, 유신과 5공 독재, 5.18과 민주화 운동, IMF 사태 등 너무나 크고 무거운 사건들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을 꿋꿋이 관통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의 작은 이야기들은 국가와 민족과 ‘역사’ 앞에 거의 다 파묻혀버렸다. 그 파묻혀버린 그들이 슬프고 아린 이야기들, 거대 서사 구조에 편입되지 않은, 편입될 수 없는 작고 일상적인 그 귀한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것이 탈(脫)중심과 탈(脫)구조의 현대 사회에서 추구해야 하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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