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곳에 오른,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고] 또 한 명의 고공농성을 보며
        2016년 06월 25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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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100리 길을 걸었다. 서울 도심 곳곳에 한광호 열사의 한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한 노동자에 대한 추모를 담았다. 어떤 날은 국회 경위가, 어떤 날은 비가, 어떤 날은 경찰과 용역이 우리를 막았지만 걷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할 수 없던 우리는 막힌 길을 열고 묵묵히 최종 도착지를 향해 걸었다.

    “꽃길 100리” 행진의 최종 도착지는 양재동 현대차 본사였다. 양재동 앞에 거대하게 솟은 두 개의 빌딩,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둥이 빌딩은 흉측하리만큼 높았다. 그 빌딩을 보며 ‘바벨탑’을 떠올렸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 죽음 앞에 절규 앞에 뻔뻔한 저들의 오만은 바벨탑보다 높아 보였다.

    그리고 오늘, 유성기업 아산지회 윤영호 지회장이 현대차 정문 앞에 망루를 쌓고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한광호 열사가 산화한 지 100일 째 되는 날이었다.

    고2

    사진=노순택

    내가 알고 있는 윤영호 지회장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즐겨하며,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키는 동네 형 같은 사람이었다. 윤영호는 어떤 마음으로 100일이라는 시간을 버텼을까. 그는 어떤 다짐으로 2011년 5월 18일 직장폐쇄부터 시작된 1900여 일간의 투쟁을 버텼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어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비 내리는 날에도 어떤 안전대책 없이 에어컨을 수리하기 위해 발코니에 올라야 했던 이 노동자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0일 넘게 냉동고에 갇힌 한광호 열사의 상주이자 노조파괴에 맞서 5년 넘게 현장을 지킨 윤영호 지회장은 망루에 오르기 직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계 순위 1,2위인 삼성과 현대. 부품사와 간접고용. 어지러운 지상을 떠나 높은 곳에 발을 딛은 그들을 생각하며, 양재동 현대자동차 앞에서 밤을 지샌다. 죽지 않을 권리가 그렇게 높은 곳에 매달린 권리인지를 묻는다.

    (* 24일 밤 11시 30분 가량 고공농성에 들어간 윤영호 지회장은 25일 새벽 3시경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의해 연행됐다. – 편집자)

    필자소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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