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다른 구의역 참사
    삼성 수리노동자 추락사
    “비정규 노동자의 목숨값 5000원”
        2016년 06월 24일 06:01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구의역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간접고용 노동자가 업무 중 또 사망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에 따르면 에어컨 수리기사인 진남진 씨가 23일 노원구 월계동 3층 빌라 건물 외벽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진 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장파열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 씨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협력업체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회 등에 따르면 진 씨는 사고 당시 별도의 안전장치도 없이 3층 건물 외벽의 실외기 앵글을 밟았다가 앵글이 무너지면서 추락했다.

    고양센터 외근 수리기사는 지회 공식 페이스북 글을 통해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일이지만 50분에 한건씩 끊임없이 밀려드는 일감을 소화하려면 안전하게 일을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건물 외벽에 매달려 수리를 해야 할 경우 고가 사다리 차량 등의 안전조치를 취한 후 수리를 해야 하지만 추가 비용 때문에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도 했다. 안전규정이 있어도 실제 작업 현장에선 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구의역 참사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이윤의 논리가 간접고용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셈이다.

    그는 “한 손에는 수리할 때 필요한 공구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 그 외에 원청에서 요구하는 여러 점검 장비들을 힘겹게 들고 가야한다”며 “안전장비를 들고 갈 여력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삼성, 비정규 노동자 목숨값 5000원”

    회사는 진 씨가 추락하고 병원에 이송된 후에도 “현재시간 외근미결이 위험수위로 가고 있음// 처리가 매우 부진함(오후4시41분)”, “금일 처리건 매우 부진함/ 늦은시간까지 1건이라도 뺄 수 있는 건은 절대적으로 처리(오후6시52분)” 등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진 씨가 사망한 시각은 오후 9시 30분, 목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실적 압박을 해온 것이다.

    이 수리기사는 “원청에서 요구하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50분에 한 건씩 밀려드는 수리건수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수리해야만 한다”고 전했다.

    삼성

    노조 페이스북에 올라와 있는 사측의 문자들

    실제로 사측은 평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실적을 올리라는 취지의 업무지시를 해왔다. 사측은 평소 수리기사들에게 “비 온다고 에어컨 다음날로 넘기지 마세요. 무조건 조치할 수 있으면 조치 당부 드립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에어컨 실외기의 경우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면 위험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감수하고도 업무를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생명을 걸고 일해야 하는 이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센터가 주는 위험수당은 고작 5000원이다.

    그는 “삼성이 생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값이 5000원 이라는 것”이라며 “앞으로 또 몇 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의 폐해로 인해 살해될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수리기사가 사망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6월 23일 삼성전자서비스 성북센터 가전 수리기사가 3층에서 실외기 수리 도중 발코니 난간이 통째로 무너져 추락사 했다. 2015년에도 안산에서 LG전자 수리기사 실외기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했다. 2014년 8월엔 전북 장수에서 티브로드 케이블 설치기사가 전봇대 작업 도중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위험의 외주화, 책임 회피, 생명보다 이윤
    노동조합 “진짜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지회는 이날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추모의 글을 통해 “아직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19세 청년노동자 김군의 산재 현장에 놓였던 꽃들이 시들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또 다른 국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회는 “위험한 일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고층 작업에 다리가 떨려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내 발을 내딛어야 했다. 건당 수수료 체계와 불안정한 삶 속에서 성수기에 벌어야 생활이 가능하기에 쫓기듯 일을 했다”며 “강도 높은 실적관리 속에 안전장비 하나 없이 일했던 그의 차에는 찢어진 도시락 가방이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대의 위험이 우리의 위험이고 그대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라며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안전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부당한 강요를, 구조적으로 전가된 위험 앞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역겨운 시도를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지회는 “위험을 외주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탐욕의 책임”이라며 “우리는 이제 진짜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할 권리를 온전히 찾아 나서겠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