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서 옥시 참사까지,
사고예방 위해 '기업처벌법' 시급
입법 토론회...“안전규정 어기면 망한다는 경고해야"
    2016년 06월 23일 04: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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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기업처벌법)’ 입법 추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 공동주관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토론회’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른바 ‘기업살인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은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시민을 사상에 이르게 한 기업과 기업의 최고경영자, 공무원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큰 틀로 한다.

정식 명칭은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이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등이 관련 법안을 이미 19대 국회에서도 발의했으나 폐기됐었다. 이번에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처벌법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유해 제조물을 취급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된다.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2003년 처음 시작돼 세월호 참사 이후 그 요구가 높아졌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발표했으나,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인 무분별한 규제완화 정책, 기업의 안전관리 외주화, 관피아 등 구조적인 문제는 짚지 않았고, 기업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한 현행법에 대한 정비도 없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흡사한 이유로 구의역 참사가 다시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이 ‘과적’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선사인 청해진 해운은 어떠한 형사책임도 지지 않았다. 사고 당시 기름을 유출해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게 전부다.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이사가 징역 7년을 받긴 했지만 죄목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등의 위반이 전부이고, 배임·횡령을 제외하면 적용되는 형량도 매우 낮은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가습기 참사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에 대해서도 현행법을 적용하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정도로, 형벌도 1억 5천만 원 정도의 벌금이 고작이다.

대규모 재난의 원인을 제공한 기업과 경영진이 이처럼 낮은 형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행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한계와 관련 법률안의 부재 때문이다. 최고경영진 등에 대한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또 입증된다 하더라도 그 형량이나 벌금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예컨대 3~4천만 원 정도의 인건비가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자를 고용해야 하는 규정을 기업이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는 고작 300만 원이다. 기업으로선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남는 장사’인 셈이다.

기업처벌법은 이 같은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무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재난을 일으킨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벌금 외에 영업정지 등 자본증식 활동에 제약을 가해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중대재해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입법 토론회(사진=유하라)

기업처벌법, 왜 필요한가.

“행동을 저지른 하위직 노동자에게만 재해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기업으로 하여금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 거의 무력하게 된다. 그러한 안전관리의 시스템을 관할하고 지배하는 것은 기업, 그리고 기업의 경영책임자이다. 오늘날 기업의 안전의무에 있어서 기업 경영책임자의 책임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대학원 교수(세월호 특조위 비상임위원)는 이날 토론회에서 “보다 전향적으로 기업 및 기업 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특히 이번 기업처벌법에는 ‘법인에 대한 처벌’ 조항이 포함된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은 5조 법인의 처벌에 따라 5년 이내 영업 정지, 5년 이하 보호관찰, 공계약 배제 등의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윤을 상쇄할 정도의 금전적 제재를 가해 기업 스스로가 안정규정을 지킬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양벌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되는 한계가 있고 재해사고에 대해선 기업 자체의 책임을 묻기 힘들었다. 이러한 양벌규정의 한계를 뛰어 넘어 기업에 대한 형사처벌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현행법과의 가장 큰 차이다.

기업처벌법, 사고 예방이 목적…더 강한 금전적 제재 필요
“안전규정 지키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경고 보여줘야”

해당 법안이 명시한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정학 방통대 법학과 교수는 “현대사회 재해사고는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위험 관리하는 체계, 시스템의 문제”라며 “기업이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를 갖춰야 하고 작동시켜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개인뿐 아니라 경영 책임자, 나아가 법인, 감독하는 정부 공무원까지 공동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하다”며 법안 취지 자체에는 동의했다.

다만 “이 법의 핵심은 5조(법인의 처벌)다. 가장 중요한 규정 조항이 돼야 한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 법 내용을 보면 법인(기업)의 처벌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지 않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업이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경영책임자라는 사람이, 실제로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 위험방지 의무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고, 사고가 날 때마다 경영책임자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이 온당하냐는 의문이 든다. 위험 관리는 시스템 자체, 결국 법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안전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온전하게 작동시켜야 하는 기업에 대하 처벌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이 법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형벌을 통한) 사고의 예방”이라며 “안전 규정이 있지만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기업 논리, 시장 논리, 이윤 논리로 인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다. 결론적으로 더 강력한 형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윤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벌금을 부과해야 한다. 징벌적 손배가 적극적으로 도입돼야 한다는 뜻”이라며 “형벌도, 법인에 대해 실질 효과를 줘 법인의 이윤 동기를 무력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법인에 대한 형사 제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지만 우리 현실엔 맞지 않다. 필요한 것은 강력한 처벌, 금전상 제재밖에 없다고 본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다른 기업에까지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 발의하면 뭐 하나… “기업처벌법, 정치인 정치행위로 전락”

민주노총은 국내에서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 처음 시작된 2003년부터 이 법안의 제정을 촉구해왔다. 처음엔 외면하던 국회도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자 앞 다퉈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10년 넘게 발의만 하고 끝났다. 정부여당이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는 그럴 듯한 변명이 있긴 하지만 일각에선 야당 의원들의 의지도 문제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기업처벌법과 비슷한 법이 19대에서 발의됐다가 폐기가 됐는데 지금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대구지하철 참사 때에도 기업처벌법을 주장한 분들이 많은데 법을 발의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고 이 법이 정치인들의 정치행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최 국장은 “실제 입법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언론에 의해 타올라 추진의 가속도를 내고 수그러들면 다시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가지고 계속 이어나가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의역 참사가 벌어지고 20대 국회는 (기업처벌법과 유사한 성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의 풍경과 비슷하다.

2013년 5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같은 해 7월 산업안전보건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냈다. 이인영 더민주 의원은 2014년 ‘생명안전 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정부도 원청업체가 안전조치를 취해야 하는 사업장을 모든 작업장으로 확대하는 등 안전의무를 크게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불산 유출 참사, 세월호 참사 등이 벌어진 후 19대 국회에서 앞 다퉈 발의한 법안들이다. 그러나 심지어 정부안을 포함하여 단 하나의 법안도 관련 상임위에서 이렇다 할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19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모두 자동 폐기됐다.

노동자·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법안 발의가 정치인들의 실적용 정치행위로 전락해버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에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지만 정작 이와 관련한 법률이나 제도를 만들 때에는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인 의지를 발휘하지 못할 때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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