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왼쪽에서 본 F1] 쥴스 비앙키 사고
        2016년 06월 20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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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줄 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놨고, 곧이어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젊은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대하는 국가와 정부의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어떤 끔찍한 사건에도, 어떤 일어나선 안 될 사고에도, 국가와 정부가 책임을 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2년 전 4월 16일, 결코 잊을 수 없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사고 직후 국가와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2년이 지나도록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파헤치는 것조차 힘든 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살인 사건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살인자 개인의 잘못인데.”, “지하철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의 죽음을 왜 정부가 책임져야 하나? 피해자든 관리자든 누군가 개인적인 실수겠지.”, “세월호 사고를 왜 국가와 정부에서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책을 내놔야 하나? 선장과 몇몇 선원이 나빴던 것뿐인데.”

    단순하고 빈약한 논리로 반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놀랍게도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점점 더 국가와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게 되어 있고, 여론이란 것은 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F1 드라이버의 경우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마침 몇 주 전 ‘개인적인 사고로 보이는’ 사고로 지난해 목숨을 잃은 쥴스 비앙키의 유족이 거의 1년 만에 F1, 모터스포츠의 최고위 기관과 조직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 싸움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의 최근 사건 사고와 비교해 생각해볼 만한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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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A 등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쥴스 비앙키의 유족들

    쥴스 비앙키의 유족이 F1을 포함한 대다수 모터스포츠의 최고 관리조직인 FIA와 사고 당시의 소속 팀 마루시아(현재 매노어)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FIA와 마루시아가 사고를 막거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FIA가 사고 직후 전문가들을 모아 사고에 대한 정밀 분석을 진행한 결과 대부분 드라이버였던 쥴스 비앙키의 책임으로 결론을 내렸던 것과는 다른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사실 F1 드라이버의 사망 사고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한’ 일이었습니다. 모터스포츠는 100여 년 전부터 ‘목숨을 내놓고’ 경기에 나서는 더없이 위험한 스포츠였고, 모든 드라이버는 충분히 위험을 인식하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1994년 아일톤 세나의 사망 사고 이후, 쥴스 비앙키의 사고 이전까지 드라이버의 사망 사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F1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경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2014년 10월, 일본 스즈카에서 쥴스 비앙키가 사고를 당할 당시에는 ‘더블 옐로우 플랙’이라는 높은 수준의 경계 상황이 선언되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사고 직후 조사를 마친 FIA는 쥴스 비앙키가 더블 옐로우 플랙에도 불구하고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었던 것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옐로우 플랙’이란 앞에 위험한 상황이 있으니 현격히 속도를 줄여 사고 상황에 대비하라는 메시지이고, ‘더블 옐로우 플랙’이란 앞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으니 ‘위급 상황을 만나면 당장 차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줄이라는 메시지입니다.

    FIA가 197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드라이버와 써킷의 안전에 대한 기준을 높여왔고, 1994년 아일톤 세나의 사망 사고 이후에 안전 기준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최근의 F1은 ‘너무 위험하지 않아서 매력이 사라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쥴스 비앙키의 사고에 대한 결론은 한 가지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좋지 않은 트랙 상황에서 드라이버가 무리했고, 여러 안전 기준이 제법 충분히 갖춰져 있었는데 쥴스 비앙키가 운이 나빴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언뜻 객관적인 것 같은 이런 결론은 앞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자주 보아왔던 그것과 흡사합니다. F1의 원로들 중 상당수 역시 쥴스 비앙키의 사고는 안타깝지만, 딱히 FIA에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쥴스 비앙키의 유족들이 법정 다툼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고 무모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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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일본 그랑프리 쥴스 비앙키의 사고 직후 모습

    단순한 논리로만 보면 쥴스 비앙키의 유족이 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흔히 생각 없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얘기처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습니다.’ FIA는 조그만 모터스포츠 관리단체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이곳저곳과 깊숙하게 관련된 거대 조직이라, 개인이 상대해서 법정에서 승리를 얻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FIA가 깊이 있는 조사를 진행했고, 몇 달 동안 조사를 마친 결과가 나와 있는 것도 법정 싸움에 나서기 부담스럽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도 쥴스 비앙키의 유족의 소송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먼저 FIA의 조사 후 발표된 사고 원인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욱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은 유족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문제 제기입니다. 자식의 죽음을, 가족의 죽음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감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드라이버가 무모했다거나 무리했다고 발표된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더블 옐로우 플랙은 규정에 의해 반드시 최대한 속도를 줄여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드라이버는 명확한 속도 제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빠른 속도로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레이스는 빨리 달려서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야 이기는 경기니까요. 너무 빨라 보이는 그 속도가 레이스에 나선 드라이버에겐 이미 충분히 늦춘 속도기 때문에, 누군가 분명하게 더 속도를 늦추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빨리 달리는 것이 모든 드라이버의 본능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날씨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습니다. 쥴스 비앙키의 사고 당시 써킷엔 많은 비가 내렸고, 사고 직전 강우량이 늘어났습니다. 노면이 젖는 것도 문제지만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고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FIA는 일본 그랑프리의 경기 시간을 유럽 시청자에 맞춰 너무 늦은 시간으로 조절했고, 경기 후반 비까지 내리자 트랙은 너무 어두워졌습니다. 그렇게 어두울 때 강우량이 갑자기 늘어났다면, FIA는 경기를 중단시켰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비앙키의 사망 사고는 같은 자리에서 자우버 소속 드라이버 아드리안 수틸이 (역시 갑자기 늘어난 강우량의 영향으로) 사고를 낸 후, 사고 처리를 위해 트랙 주변 방호벽 안쪽으로 진입한 중장비와 부딪히며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즉 이미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 되어 수틸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경기를 중단시키거나 최소한 (직접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티카를 트랙에 내보내는 조치는 없었습니다.

    비앙키가 큰 사고를 겪은 다음부터 좀 더 민감하게 트랙 안전을 유지하는 조치가 내려진 것을 본다면, 이전에 미리미리 조금 과하다 싶도록 안전 조치를 했다면 비앙키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쥴스 비앙키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인 F1 무대에서, 어쩌면 자기가 좋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속도를 줄이라는 더블 옐로우 플랙 메시지가 있었지만, 충분히 속도를 줄이지 않은 것이 중요한 사고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글 도입부에서 얘기한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와 비교하면, 훨씬 더 사적이고 다른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 곤란한 사고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쥴스 비앙키의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많은 이들이 유족들의 뜻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피해자의 과실이 섞여 있더라도, 관리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없어 보이더라도, 모든 것을 관리하는 조직이나 기로 관이라면 모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고 책임져야 하는, 적어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F1의 1970년대는 흔히 ‘킬링 로드(Killing Road)’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은 시기였고, 1975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의 마크 도나휴도 그런 희생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나휴의 유족은 소송을 통해 타이어 제조사 굿이어와 소속 팀 펜스케의 책임을 물었고, 도저히 타이어 제조사나 소속 팀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주변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타이어 제조사는 거액의 합의금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사실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비앙키의 유족이 싸워야 하는 법정 다툼도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쥴스 비앙키의 유족이 F1과 모터스포츠를 주관하는 최고위 기관 FIA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맨 처음 얘기로 돌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가 나타났을 때, 과연 국가와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합니다. 국가와 정부에 아무런 책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아무 책임이 없다는 얘기는 모든 것을 끝까지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사회 안전망과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여러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진 뒤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깊이 있는 조사와 검토, 날 선 토론을 피한 채 결론을 내리기엔 이릅니다.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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