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토대 관심이 협동조합 출발점
    [협동조합의 역사 의미 미래 ②] 사회운동에서의 역할
        2012년 08월 01일 06: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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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은 만능이 아니다?

    얼마 전 레디앙에 ‘협동조합은 만능이 아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 글을 보면서 나는 갸우뚱했다. 왜냐하면 어떤 협동조합운동가도 “협동조합은 만능이다”라든가, “협동조합은 모든 사회운동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러시아의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의 이론가 가운데 가장 열정적이었던 투간바라놉스키 조차도 “협동조합이 다른 노동자계급의 조직들보다 –사회관계의 근본적인 변혁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훨씬 결정적인 투쟁을 수행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 제도를 개조하는 유일하거나 핵심적인 무기라고 보지 않았다”.

    즉 그 기사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상정하고 “너는 유령이다”라고 말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협동조합은 만능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사업조직의 하나의 형태로서 자신의 역할을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에 따라 제대로 된 사업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만 그런 활동들을 통해 그 협동조합이 직면하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 사회구조의 문제점들에 대해 때로는 의도한 효과로 때로는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로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의도한 효과가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그 협동조합은 선한 의지와 열정적인 협동조합 활동가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87년체제의 성립과 시민사회의 대두

    협동조합운동의 의의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우선 일상적 생활로서의 경제적 토대와 담론경쟁의 공간인 시민사회, 제도를 구성하고 강제력을 독점하는 국가의 관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자.

    1980년대말까지 기존의 진보적 운동의 이념 체계 속에서 사회운동의 가장 발전된 형태는 주로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이를 반영하여 정치적 영역에서도 자본가의 위원회로서의 기존의 국가와 노동자의 국가가 대립하여 급격히 교체하는 혁명으로 상정되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을 통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도입,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로 설명되는 3저 호황을 경과하면서 안정화 단계에 들어간 우리나라 경제의 양질적 발전,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기존 이념에 대한 재검토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세계 10대 교역국이나 가전 및 IT산업의 세계적 경쟁력의 확보, 1인당 GDP 2만달러 시대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우리나라의 변화는 중산층 혹은 정규직 노동자까지 무산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도록 만들어냈다.

    적정한 사회적 물적토대를 갖추게 된 우리나라의 구조적 모형을 기존의 경제토대-상부구조의 2단계 체계보다 그람시의 경제토대-시민사회-국가라는 3단계 체계로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되었다.

    이런 변화는 노동운동의 대국민적 영향력의 확장이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한계에 갇히는 반면, 여성운동과 언론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정책적 시민운동단체 등 노동-자본 관계와 상대적으로 독자적이며 독립성을 가진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의 확산에 따라 실질적인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협동조합은 생활의 발견이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대중에게 가장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제생활의 영역에 대해서는 사회운동 전체의 전략적 방향과 적극적으로 연결하려는 작업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경제토대에 대한 관심은 ‘자본의 영역’으로 치부하거나,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려는 노력은 정치사회운동의 낮은 단계로 치부하면서 수단화시키거나 ‘개량주의적 접근’으로 평가절하되었다.

    예를 들어 농민운동에서도 UR반대나 ‘쌀수매가 투쟁’과 같은 제도적 영역 중심으로 운동이 진행되고 자립적 공동경제활동은 현장의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주변부적인 활동 정도로 취급되었다.

    경제적 토대의 변화를 사회운동과 연결시키는 전략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무관심은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특징이면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토대에 대해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다수 대중과 일상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회운동은 어떤 형태로든 ‘소수의 지식인 운동’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버린다.

    실제 19세기 전반 자본주의가 사회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후 다양한 나라에서는 협동조합과 사회의 발전에 대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자유주의운동부터 사회주의운동까지 넓은 사상적 스펙트럼 내부에서 모두 나타나는 경향이었다.

    거대한 절망을 일상의 희망으로 바꾸는 협동조합

    각 나라에서 협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는 시기는 1)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정치적 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2) 국가 간의 무력충돌로 패배하여 민중들이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경우, 아니면 3) 심각한 경제위기로 인해 시장과 국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민중들이 생활고를 겪을 때 였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첫 번째, 정치적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경우이다. 1905년 러시아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러시아 인민은 “오직 자주성, 상호부조, 그리고 일치 단결 속에서만”, 즉 협동조합을 통해서만 ‘더 나은 미래로 가는 확실한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나간다.

    이 당시 협동조합의 성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자카프지예 지역의 신용협동조합의 성장이다. 1905년 1개소 였던 신협은 1907년 35개소, 1911년 111개소, 1914년 371개소로 급성장하였다. 이런 성장세가 지속되어 1917년 2월혁명 전후에는 전체 인구의 세 사람 혹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사회경제운동으로 성장했다.

    국가 간의 군사경쟁에서 실패한 두 번째 경우는 덴마크에서 극적으로 볼 수 있다. 덴마크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의 패전에 연이어 1864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에서도 패배하여 국토의 3분의 1을 잃게 되면서 국민들의 절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코펜하게 왕립도서관에 있는 그룬트비히의 상

    덴마크 협동조합의 아버지 그룬트비히는 이런 절망을 달래기 위해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삶의 위한 민주적 방식의 교육을 통해 건강하고 협동적인 젊은이를 육성하며 황무지를 개척해 나갔다.

    이후 1870년대 중반 국제곡물가격이 폭락하자 양돈과 낙농을 통한 축산업 협동조합을 활성화시켜 새로운 국가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이때 형성된 협동조합은 지금도 강력한 농업협동조합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 번째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협동조합이 활성화 된 것은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을 사례로 들어보면,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에서는 또한 수많은 농업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영농자재 구매협동조합의 사업규모는 1924년 7,600만 달러에서 1934년 2억5,000만 달러 규모로 증가하였으며, 뒤이어 미국 전역에 걸쳐 농업협동조합의 설립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농민들에게 석유를 공급하기 위한 석유협동조합도 빠르게 성장하여 1935년에는 약 2,000개의 석유협동조합이 4,000만 달러의 석유제품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일상의 경제활동에서 다수의 대중에게 희망을 제공할 수 있었던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지도자들은 사회적 영향력도 극대화되고, 대중들도 자신이 참여한 협동조합의 성과를 경험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꿈과 의지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것이 협동조합운동의 의의이다. 다만 그것이 다른 사회구조, 정치구조의 발전에 어느 수준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협동조합운동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기 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얼마나 현실적인 발전계획과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동안의 협동조합의 역사는 사상가들의 다양한 협동조합의 발전경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 것처럼 협동조합이 단순히 자본주의의 파괴적 성향을 보완해 주는 기능에서 머무르는 경우도 있고, 사회구성체의 이행에 기여하기도 하고, 새롭게 구성된 민중권력을 안정화시키는데 활용되기도 하고, 심지어 보수적 정권의 시녀로서 역할하기도 했다.

    어떤 협동조합을 만들고, 어떤 협동조합생태계를 구성하는가는 결국 성공적인 협동조합을 만들고 주도하는 지도자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조합원들이 어떤 사회를 디자인하는가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있다.

    한국의 사회운동과 협동조합

    위의 협동조합운동의 일반적인 의의는 이미 한국의 협동조합 역사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1992년 민중당의 선거 패배를 평가하면서 당시 민중당의 활동가들은 진보정당의 활동이 민중들과 일상적으로 결합하지 못했다고 반성하면서, 당시 확장되는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지역별로 전개해 나간 사례를 가지고 있다.

    농민운동도 정책제도적 개선활동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수행하는 가운데,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농민운동의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가톨릭농민회의 새가농운동을 중심으로 도시-농촌공동체운동, 수십만명의 회원으로 조직한 우리밀살리기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도시빈민운동도 노동자생산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생산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고, 이런 흐름은 IMF를 맞으면서 실업극복운동과 연결되었으며 최근의 자활운동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들은 노동자협동조합 혹은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운동과 연대하는 협동조합운동

    필자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사회운동이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이거나, 그 사회운동이 확대발전하면 다른 사회운동을 주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체 운동의 질을 높인다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운동의 한계’라는 이슈나 ‘협동조합은 만능이 아니다’라는 이슈는 실제 사회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과 실천을 생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논의라고 생각한다.

    지방자치운동이나 정치운동, 시민사회운동, 심지어 노동운동 등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영역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력은 경쟁하고 있으며, 특정한 사회운동이 이 모든 활동에서 주도하려 한다면 이들 각각의 운동에서 ‘실력을 가지고 대중을 조직하고 신뢰를 높여야 하며’, 동시에 이런 다양한 운동을 연결하여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스스로 다양한 사회운동 영역과 연대하려 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속에서 가장 주도적이 될 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협동조합운동을 주도할 수 없으면서 전체 운동을 주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필자소개
    현재 사단법인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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