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문제는 ‘정치’다
    [책소개]⟪주식회사 대한민국⟫(박노자/한겨레출판)
        2016년 06월 18일 02:12 오후

    Print Friendly

    헬조선, 이민 외에 답은 없는가?

    악질기업 (주)대한민국에서 불안정한 피고용자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오늘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헬조선’이다. ‘지옥’이라는 뜻의 영단어 hell과 한반도의 전근대 국가인 ‘조선’을 합친 말이다. 그런데 왜 ‘헬한국’이 아니고 ‘헬조선’인가? ‘금수저, 흙수저’와 같이 계층 자체가 고착화돼 마치 조선 때와 같은 ‘신분세습’ 사회가 된 것 아니냐는 통찰이 깔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오력’해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정서다.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근본적인 성찰을 이어온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의 신간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바로 이와 같은 ‘헬조선’에 대한 분석이다. 헬조선의 원인은 무엇이고, 그럼에도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기업국가 대한민국’이 만들어내는 현대판 계급사회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가 꼽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고 사회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기업국가’화되어 자본의 이익 보호에 집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연대는 막아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주식회사에 견주어본다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진다. (주)대한민국의 주주는 누구인가?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곤한 노동자’들은 과연 ‘주주’인가?”(11쪽)

    대기업의 대주주나 임원, 고급공무원, 혹은 땅부자 등 고액재산 보유자들이야말로 (주)대한민국의 진짜 주주라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들은 서로 겹치거나 혼맥 등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로 연결되기까지 해서 매우 공고하고 배타적인 집단이 되었다. 그러기에 (주)대한민국은 기업 중에서도 악질기업이 되기 쉽다. 오로지 주주들의 배당금 극대화만을 위해 분투할 뿐, 피고용자에 대해서는 그저 주주 배당금 극대화의 ‘재료’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하도급중소기업으로, 정규직-비정규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경제구조를 보자. 재벌들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직접 고용을 하며, 대부분은 각종 하도급·영세업체에 고용되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 혹은 ‘알바’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의료·교육 등 본인의 생존과 자녀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부터 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들다. 실업수당,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적 임금들은 그 지급 기간이 짧거나 조건이 까다롭거나 생활이 불가능한 작은 액수다. 결국 정규직 직장이 없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현대판 천민계급 만들기와 다름없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생존 전사’가 될 것인가, 자율적 개인이 될 것인가

    결국 생존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며 끊임없이 착취를 이어가는 것이 헬조선의 모습이다. 하여 우리는 ‘개인’이라기보다는 ‘전사’로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부적응자로 낙인찍혀 걸러지지 않고 어떻게든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 매일같이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고 계획한 공부에 매진하라던 한 사교육 기업의 광고 문구는 우리 사회가 ‘생존 전사’를 키워내는 데 얼마나 “총동원”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사’가 되기 위해서 ‘우정’ 따윈 필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동원’되며 이 시스템의 유지에 기여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성장 신화’일 것이다. 여태까지의 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 생계 안정을 이룩한 부모 세대가 있고, 그 지원으로 실업자가 돼도 당장 굶어죽을 일은 없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은 한편으론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면서도, 한편으론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한다. 하지만 성장은 둔화되고, 재벌경제가 아무리 수출을 잘해도 다수의 삶이 나빠지기만 하는 경험은 늘어나기만 한다.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연대해서 이 사회를 바꾸지 않는 이상 다른 길은 없을 것이다. 생존 공포라는 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회적 책임’ 요구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공포에 빠져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아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만을 꿈꾸는 사람은, 사회적 부조리를 거부할 줄 아는 자율적 개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사회의 ‘주류’가 간절히 열망하는 사항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세 번의 큰 전환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첫 전환은 1960년대 초반의 개발주의적 권위주의 국가로의 전환이었다. 노동자들은 그저 성장에 필요한 ‘재료’일 뿐이었지만 ‘성장 덕에’ 아사지경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점에 감지덕지해야 했다. 두 번째 전환은 1980년대 말부터 이루어진 제도적 민주주의의 도입이었다. 1987년 이후,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느낀 정권들은 기초적인 일부 사회보장제도들을 제한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1997~1998년 대한민국은 세 번째 대전환을 맞이했다. 신자유주의적 ‘주식회사형’ 국가로의 전환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 주식회사형 국가에 대한 종합보고서 성격을 띤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1부 지옥의 논리’는 ‘헬조선’을 떠받치고 있는 논리들을 살펴본다. 경제력을 중심으로 차별하고 서열화하는 모습, ‘생존’이라는 미명 아래 양심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 ‘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스스로를 착취하는 모습 등을 살펴본다.

    ‘2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박근혜 시대’ 우리 사회 주류세력의 모순과 한계를 집중 분석하고, ‘3부 씨줄과 날줄: 병영국가, 민족주의, 식민성’에서는 ‘박근혜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우리 사회 기저에 깔려 있던 인식들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4부 문제는 국가다’에서는 대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적어도 재분배 기능, 자본에 대한 견제·보완 기능은 갖춘 국가로 나아가자고 외친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10쪽) 하지만 여기서의 정치란 단순히 정치인들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본적 구조와 그 구조를 유지하려는 지배계층의 힘, 그리고 그에 맞서는 피해대중들의 저항력. 이 두 거대한 힘이 서로 맞서 그 사이에서 어떠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였고, 특히 최근의 진보정치 약화는 바로 이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해답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공통의 책임의식을 공유하는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연대만이 살릴 수 있을 것이다”(33쪽)라고.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