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랜드 참사,
    누가 혐오를 부추기나
    [기고] 다시, 사랑과 연대로 이겨야
        2016년 06월 17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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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생한 미국 올랜드 게이클럽 총기 참사에 대해, 그 사건 배경에 대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IS와의 직간접적 연계 또는 자생적 테러 행위라는 분석과 동성애 혐오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들이 있다. 물론 IS가 극단적인 동성애 혐오세력이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가 별개는 아니다. 이 중 동성애 혐오와 무슬림 혐오라는 점에 주목한 기고글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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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퀴어문화축제와 퍼레이드는 자유의 공기와 해방감이 넘쳐났다. 음악에 맞춰서 신나게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속에 같이 행진하면서 나는 ‘이런 사랑과 연대의 축제가 매일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길거리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가워하는 표정에도 흥겨움이 묻어났다. 동성애에 대한 저주를 쏟아내는 ‘혐오 세력’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과 무시 속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야말로 ‘사랑이 혐오를 이기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사상 최대라는 5만 명이 참가한 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하루가 지난 후, 미국 올랜도에서 끔찍한 참사 소식이 들려왔다. 올랜도 게이클럽에서 일어난 이 비극은 여전히 ‘혐오가 사랑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처참하게 드러냈다.

    총기난사범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은 혐오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왜 우리가 혐오를 용납해서는 안 되는지 보여 줬다. 총기난사범의 부모, 전 부인, 직장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인종·성차별적 편견과 증오심에 찬 발언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올랜드

    방송화면 캡처

    증언과 증거가 일부 엇갈리고 있지만, 동성애 자긍심의 달이자, 동성결혼 합헌 판결 1주년이 다가오는 시기에 게이클럽이 학살의 무대가 된 것은 이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관련 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의 다수도 가난한 라틴계 이민 2세의 성소수자들이었다.(범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동성애자였다는 증언도 나온다.)

    따라서 수많은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 권리 지지자들이 이것을 ‘동성애 혐오’가 낳은 참극으로 보고 혐오의 중단을 외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공감할만한 반응이다. 이것은 가장 인간다운 반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비극을 또 다른 혐오의 불쏘시개로 쓰려는 자들이 바로 그렇다.

    대표적으로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는 범인이 아프가니스탄 이주민 2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슬림 혐오에 불을 당기고 있다. 자신의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다. 모든 무슬림이 다 괴물이고 과격한 테러리스트라는 식이다.

    하지만 총기난사범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이기에 입국 금지로 막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총기난사범은 결코 16억 무슬림을 대표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사망한 무하마드 알리처럼 전쟁에 반대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위대한 무슬림도 많다.

    게다가 기독교 근본주의에 찌든 백인이 저지른 증오 범죄 때는, 결코 이런 식으로 모든 백인과 기독교도가 다 문제고 추방돼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온 바가 없다. 이처럼 동성애 혐오가 낳은 비극을 무슬림 혐오에 이용하려는 것은, 이 비극의 사회적 뿌리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누가 왜 동성애 혐오를 부추겨 왔는지를 가리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미국 밖에서 이슬람 종교와 무슬림들이 새롭게 가져 온 ‘비미국적 가치’가 아니다. 이 나라 기독교 우파들의 동성애 혐오가 이슬람과 무관하듯이 말이다. 동성 결혼한 한 여성 코미디언을 ‘추잡한 돼지’라 불렀던 건 바로 트럼프였다.

    미국 정치를 지배해 온 거대 양당 중 하나인 공화당은 레이건 정부 시기 동성애자들을 ‘AIDS 숙주’ 취급하며 박해한 당사자들이다. 공화당은 지금도 동성결혼을 반대하며, 주요 기반인 기독교 우파와 연결된 정치인들은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고 수술로 그것을 바꿀 수 있다는 ‘전환 치료’를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런 반동적인 입장을 ‘종교의 자유’라며 옹호하기도 했던 이들이 지금 와서 동성애 혐오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다.

    민주당은 좀 다르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 사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대통령일 때 동성결혼 반대 법안에 서명했었고, 힐러리는 근래에야 동성결혼 지지로 돌아섰다. 오바마도 재선되고 나서야 동성결혼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고용과 취업에서 LGBT를 차별하지 않는 법안에 여전히 서명하지 않고 있다.

    동성애 박해와 혐오의 배경

    역사적으로도 동성애를 ‘비정상’ 취급하며 박해하기 시작한 때는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하며 소가족 제도가 만들어지던 시기와 겹친다. 미국에서도 성소수자들의 권리는 올해로 47주년을 맞는 스톤월 항쟁을 기점으로 힘겹고 끈질기게 이어진 아래로부터 투쟁 끝에 얻어진 것이지 결코 미국 주류사회의 선물이 아니었다.

    물론 오늘날 중동의 많은 억압정권들이 동성애를 사형 등으로 박해하고 있다. 하지만 중동은 19세기만 해도 서유럽보다 성이 더 자유로운 지역이었다. 중동 주요 국가들에 동성애 탄압 법률이 도입된 것은 서방 제국주의의 점령기였다.

    지금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동성애 억압을 자행하는 것도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이라크에서도 이슬람국가만이 아니라 친미 수니파 반군들도 동성애자들을 살육하고 있다. 지금 수많은 무슬림 종교 지도자와 공동체들도 올랜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즉 이슬람의 경전과 교리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석과 적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 이번에 한 미국 침례교 목사는 “게이가 더 많이 죽지 않은 것이 비극”이고 “만일 나였다면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벽에 세워놓고 총으로 머리를 날려버렸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어서 충격을 줬다.

    힐-트

    결국 혐오와 편견의 진정한 사회적 뿌리는 이슬람 종교와 무슬림에 있지 않다. 더구나 미국 사회와 주류정치권은 혐오와 편견에 빠져든 사람이 언제든 살상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허용해 왔다. 그토록 많은 총기난사와 가슴 아픈 죽음들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지금, 오바마와 힐러리가 다시 총기 규제를 말하고 있지만 총기협회와 군산복합체의 막강 로비력 앞에 다시 꼬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것은 본질을 놓치고 있는 대책이기도 하다. 과연 ‘아무나 총을 구해서 공공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일까? 그렇다면 왜 미국과 마찬가지로 민간인 총기 소유가 가능한 다른 여러 나라들 중에서 유독 미국에서만 총기 난사 사건이 수시로 벌어지는 것일까? 총기는 원인이 아니라 도구인 것이다.

    원인은 극단적 신자유주의 속에 빈곤, 실업, 소외, 차별이 만연한 미국 사회에 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시장논리는 절망에 빠져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더구나 인디언 학살부터 시작돼 제국주의 역사 속에 아로새겨진 미국의 오랜 군사주의적 폭력의 문화는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극단적 양극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베트남전 패전 이후 잠시 움츠러들었던 미국이 다시 군사적 개입을 확대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 국내에서도 총기난사 사건이 늘어난 것은 우연이 일치로 보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민간인의 총기 소유 제한은 반쪽 해결책에 그칠 수 있다. 미국에서 흑인들은 민간인이 아니라 경찰의 총으로 살해되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경찰은 군대 수준의 중무장을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범인도 사설감옥과 이민자구금시설을 운영하는 민간군수업체 소속 직원으로 뉴욕경찰이 되고 싶어했던 자였다.

    무엇보다 학교, 결혼식장 등 공공장소에서 민간인을 향해 ‘총기난사’를 하는 것은 아시아와 중동에서 미 제국주의 군대가 자주 해 온 범죄 행위다. 그렇기에 오바마와 힐러리가 말해 온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감시와 척결’은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정부의 시민적 권리 제한과 시리아 폭격이 국제적 테러의 확산을 막지 못했듯이 말이다.

    이미 오바마 정부가 반테러를 핑계로 도청과 감시를 확대해 온 것은 스노든의 폭로로 드러난 바 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척결’하기 위한 오바마의 폭격도 이미 충분하다. 오바마는 중동에서 전임 부시 정부보다 4배나 많은 사람들을 드론 폭격으로 살해했다.

    근래 오바마 정부는 동맹세력과 함께 이슬람국가의 3대 거점인 팔루자, 락까, 모술을 폭격하고 군사적 대공세를 펼쳐 왔다. 그러나 많은 중동 전문가들은 ‘이슬람국가는 제거되더라도 테러국가에서 테러운동으로 바뀔 뿐’이라고 전망한다. 강대국의 침공, 점령, 폭격과 학살이 낳은 이라크, 시리아의 지옥 같은 상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지옥을 벗어나자고 일어선 아랍혁명과 시리아 저항세력은 서방 강대국과 아랍 독재정부, 이슬람국가의 협공 속에 목 졸려 죽어갔다. ‘21세기의 파리꼬뮌’이라 불리던 시리아 알레포가 대표적이다.

    사실 중동에서는 올랜도 참사 같은 비극이 매일 벌어진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탈출하는 난민이 그토록 많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중동의 난민들은 탈출 과정에서 ‘무슬림 혐오’에 기반한 유럽 각국의 난민 통제와 거부 때문에 또 생지옥을 맛보고 있다.

    근래 유럽 강대국들이 터키-그리스 루트를 봉쇄한 결과 5월 마지막 주에만 700명의 난민이 지중해에 빠져 죽었다.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발견된 연인들도 있었다. 올랜도에서 죽은 50여명과 더불어 이들은 모두 이 잔인한 세계의 희생자들이다.

    이 잔인한 세계는 우리가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게 해서, 불평등과 불의를 유지하려고 한다. 동성애 혐오가 낳은 비극을 무슬림 혐오로 돌려막기하려 한다. 혐오 세력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기독자유당이 ‘동성애·무슬림 반대’를 내걸고 원내진출 문턱까지 갔던 이 나라에서 우리는 더욱 더 맘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혐오는 답이 아니다. 혐오를 부추겨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고, 그것이 또 다른 혐오를 낳고, 그것을 이용해 더 큰 재앙을 준비하는 이 인간 혐오 체제는 더 큰 사랑과 연대를 통해서만 막을 수 있다.

    * 이 글의 더 자세한 원문은 여기에도 같이 실렸다. http://anotherworld.kr/292

    필자소개
    다른세계를향한연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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